[러시아사] - 민족주의와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공화국의 시대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도 각지에서 일어나는 민족주의적 독립투쟁과 경제정책 파행으로 소비에트 내부의 상황은 파국을 향하고 있었다. 고르바초프 집권 초기의 낙관론과 희망적인 메세지는 모두 사라진 상태였고, 대중의 열광이 난국을 타개할 것이라는 고르바초프의 희망이 무색하게 상황은 악화되었다.
러시아의 경제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있었다. 소비에트 시민은 물질문명적 측면에서 매우 궁핍해졌다. 1990년 무렵에는 산업쇠퇴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경제가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소비품 부족사태로 인해 상점에는 긴 줄이 생겼고, 기근에 대한 우려까지 불거졌다. 1990년 봄, 우랄과 시베리아, 우크라이나 광부들이 파업을 일으켰다. 그들은 물질적인 상황으로 인해 파업을 일으켰지만, 곧 고르바초프와 소비에트 정부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었다.
상황이 궁핍해지면서 사회는 혼란에 휩싸였다. 범죄와 매춘, 사회문제들이 터져나오면서 정부는 이를 수습하고자 애를 썼다. 그 일환으로 발행한 신화폐는 결국 사태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신화폐 발행은 인플레이션을 잡는데 실패했을 뿐아니라 평범한 노동자들의 연금과 저축에 피해를 끼쳤다.
1988년 12월에 있었던 아르메니아 지진같은 자연재해, 1989년 6월 우랄지역의 열차충돌과 이로인한 가스폭발 사고 등은 소비에트 정부가 얼마나 무능하고 결함이 많은지 대중에게 폭로하는 사건이었다. 여기에 1988년 벨라루스 민스크 부근에서 10만여명의 유해가 발굴된 사건이 있었다. 이 유해들은 스탈린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이라고 특별 위원회는 밝혔으며, 이 뿐만아니라 우랄 지역의 첼랴빈스크, 스베르들롭스크 등에서도 대규모 유해매장지가 확인되었다. 글라스노스트는 이 모든 것에대해 정보를 제공했다.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위기가 겹치면서 소비에트 체제는 흔들리고 있었다. 이윽고 1991년 3월에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소비에트는 유지하되 새로운 연방을 설립하는 안이 통과되었다.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아르메니아, 조지아, 몰다비아는 새로운 연방에 참여하지 않았다. 고르바초프는 새로운 연방을 조직하는데 착수했다. 이때 국가비상 위원회는 갑작스러운 쿠테타를 일으켜 고르바초프를 체포하고 소비에트를 수호하려하였다. 그러나 이 쿠테타는 복종거부와 빈약한 계획으로 3일만에 좌절되었다. 이 사건으로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했다.
이제 옐친이 이끄는 러시아 정부는 공산당을 불법을 선언했으며 공산당 재산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12월 9일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공화국 지도자들은 독립국가연합 (CIS, 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을 창설하고 CIS가 소비에트를 대신한다고 선포했다. 소비에트 러시아는 이렇게 소멸했다. 그 후 몇주간 소비에트 산하의 공화국들이 독립을 선포하였다. 보리스 옐친이 대통령이 되어 러시아 공화국을 이끌면서 러시아는 다시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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