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사] - 국민의회의 개혁과 프랑스를 향한 위협, 루이16세의 처형과 혁명의 혼란
국민의회는 혁명의 토대 위에서 새로운 프랑스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재정이었다. 혁명의 혼란으로 말미암아 세금이 제대로 징수되지 않고 있었기에, 국민의회는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여 이를 담보로 아시냐라는 지폐를 발행하였다.
성직자와 교회는 재산을 몰수당했고 조직의 개혁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국민의회는 수도원을 해체하고 성직자를 선출제로 바꾸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직자민사기본법에 대해 로마 교황이 반발하고 성직자의 지지도 얻지 못하면서 이 법은 차후 반혁명과 내란이 일어나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또 국민의회가 해결해야할 문제는 제헌, 즉 헌법제정이었다. 헌법에 대한 논의는 혁명 직후인 1789년 여름부터 진행되었으나 최종 가결은 1791년 9월 3일의 일이었다. 91년 헌법은 봉건제를 대체할 새로운 정치체제로 권력분립의 원칙에 따라 단원제의 입법군주제를 채택했다. 91헌법은 참정권을 약 400만명에 불과한 능동적 시민에게만 부여했다. 91헌법에 의한 정치체제는 재산자격으로 인한 철저한 유산계급의 지배체제였다.
그러던 중 루이 16세는 파리 시민의 감시 속에서 지내다 탈출을 감행한다. 이는 매우 큰 사건이었다. 이를 바렌사건, 바렌 도주라고 부른다. 프랑스의 국왕이 자신의 국가와 시민을 믿지 못해서 수도 파리를 버리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1791년 6월 루이는 왕비 앙트와네트와 국외로 망명할 계획을 세웠으나, 바렌느에서 발각되어 결국 다시 파리로 연행되었다. 파리는 국왕을 침묵속에 맞이했다. 루이의 망명시도는 국왕이 가진 권위와 신뢰에 큰 타격을 가져왔다. 1791년 7월 17일 6,000여명이 모여 루이 16세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들은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시위를 진행했는데, 국민방위군 사령관 라파이에트는 시위대의 해산을 위해 발포까지 허용하였다. 이로 인해 프랑스의 워싱턴을 꿈꾸던 자유주의 귀족의 대표 라파이에트의 정치적 생명도 끝이 났다.
루이가 체포되어 파리로 압송된 다음해인 1792년 9월 22일 국민공회는 왕정을 폐지하고 정식으로 공화정 제정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그해 연말 루이 16세의 재판이 이루어졌다. 국민공회의 지롱드파는 최소한 사형만은 면하게 할 작정이었으나 막상 시작된 재판은 만장일치에 가까운 비율로 루이 16세의 유죄를 인정하였다. 여기에 근소한 표차로 사형이 결정되어 1793년 1월 21일 프랑스의 황제 루이 166세는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1791년 국민의회에서 채택된 헌법에 의거해 선출된 입법의회는 대부분 신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때는 공화주를 지향한 자코뱅파에서 나온 지롱드파가 브리소를 중심으로 중간파를 포섭하면서 입법의회의 주도권을 잡았다. 브리소는 입법의회 초기부터 혁명전쟁을 주장하였는데,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의 친정인 오스트리아와 절대주의 체제에 매몰된 유럽에 철퇴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신성 로마제국 황제 레오폴트 2세와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공동으로 필니츠 선언을 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다. 선언의 내용은 프랑스 왕가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혁명에 개입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1792년 4월 브리소파는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를 진행하였다. 오스트리아의 동맹국 프로이센은 오스트리아를 도와 참전하였다. 이렇게 23년간 지속될 프랑스 혁명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전쟁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설상가상 프랑스는 혁명 이후 장교의 절반이 망명을 갔다. 개전 직후 프랑스군이 패전을 거듭한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1792년 7월 하순 프로이센군의 사령관 브라운슈바이크는 파리 시민에 대해서 위협적인 발언으로 도발했지만 이는 파리 시민들의 혁명열을 고조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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