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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민수] - 독립군이 사용한 권총들 [독립민수] - 독립군이 사용한 권총들 독립군은 다양한 종류의 권총을 사용했습니다. 마우저, 콜트, 브로우닝 등 다양한 제조사의 권총이 운용되었는데 이 권총들은 주로 유럽에서 제조되었고, 독립군 장교들이 사용하였습니다. 독립군이 다뤘던 권총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마우저 권총 독일의 총기제작사 마우저에서 생산된 권총입니다. 우리가 살펴볼 모델은 C96 모델입니다. 이 모델은 러시아의 레닌이 홍범도 장군에게 선물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박스형 탄창은 당시 매우 비쌌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조금 특이한 고정형 탄창을 쓰고 있습니다. 권총집을 활용해서 개머리판처럼 사용했기 때문에 매우 특이했습니다. 홍범도 장군의 남은 사진에서 이 권총집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마우저의 M.. 2023. 1. 18.
[고려사] - 고려의 고구려 계승의식과 북진정책, 거란과 전쟁 (1~3차 여요전쟁) [고려사] - 고려의 고구려 계승의식과 북진정책, 거란과 전쟁 (1~3차 여요전쟁) 고려는 국호에서 보여지듯 건국 초부터 고구려를 계승을 표방했다. 이는 적극적인 북진 정책을 국조로 삼는 기반이 되었다. 이에 따라 지금의 평양인 서경을 중시하고, 평양을 기반으로 하여 청천강 이북으로 영토를 확대하려하였다. 그러나 고려의 북진 정책은 발해를 멸망시키고 만주 일대에서 세력을 영유하던 거란에게는 무시할수 없는 도전이었다. 두 나라의 대립은 곧 갈등으로 나타났다. 거란은 스스로를 키타이라고 부르는 유목 민족이다. 거란은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져있었는데, 당에 복속하였다. 그러던 중 당 말기의 혼란기에 질랄부에서 야율아보기라는 걸출한 리더가 나와 부족을 통일하며 거대 세력을 형성하였다. 또한 서쪽의 탕구트와 동쪽의.. 2023. 1. 17.
[러시아사] - 소비에트 연방과 제 2차 세계대전: 소비에트 적군의 반격과 베를린 진격 [러시아사] - 소비에트 연방과 제 2차 세계대전: 소비에트 적군의 반격과 베를린 진격 1943년 여름 독일군의 공격이 소강상태에 들어서자 소비에트 적군은 다시 반격을 시작했다. 적군은 세력을 규합해서 침입자들을 영토에서 몰아내고 결국에는 부다페스트, 빈, 프라하, 베를린까지 진격했다. 적군의 진격은 수도 베를린을 점령하고 전쟁이 끝날때까지 이루어졌다. 적군의 압도적인 승리는 독일군의 전력이 모두 소진되었기에 가능했다. 독일군의 탄약과 물자는 사실상 소진되었고 인력구성 역시 독일인이 아닌 루마니아 인이 크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지휘권을 가져간 히틀러는 계속해서 실수를 저질렀다. 너무 늦은 시기까지 후퇴를 허락하지 않았고 제때 지휘가 전선에 도착하지 않았다. 소비에트 적군은 여전히 막대한 손실을 입으면서 .. 2023. 1. 16.
[프랑스사] - 프랑스의 절대왕정의 구조와 성립 [프랑스사] - 프랑스의 절대왕정의 구조와 성립 유럽의 절대왕정은 유럽의 사회가 봉건시기를 탈피하여 근대사회 성립의 초기단계이다. 절대왕정국가는 봉건 제후들에게 나뉘어져있던 권력을 왕을 중심으로 모으고 국가를 통일시켜 행정, 사법, 군사적 측면에서 중앙집권화를 이룬 국가를 말한다. 국가 통일과 중앙집권으로 이룬 왕권은 매우 강력했다. 정치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전제정치에 가까웠다. 그러나 절대왕권 역시도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는 권력은 아니었다. 절대왕권 역시 귀족이나 의회, 세습 관료집단에 의해 견제를 받았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것이 절대왕권의 기준이 된다. 사상적으로는 왕권신수설을 기반으로, 경제적으로는 중상주의를 기본으로 하였다. 절대왕정은 관료제와 상비군의 존재를 통해 강력한 권.. 2023. 1. 15.
[러시아사] - 소비에트 연방과 제 2차 세계대전: 독일의 2차 대공세 [러시아사] - 소비에트 연방과 제 2차 세계대전: 독일의 2차 대공세 1941년 진행된 독일군의 첫번째 공세에 비해서 독일군의 두번째 공세는 범위와 물량이 제한적이었다. 첫번째 공세는 러시아의 혹한에의해 패퇴당했지만, 겨울이 지나가자 1942년 두번째 공세가 시작되었다. 1942년 여름 시작된 독일의 2차 대공세는 보로네시로부터 흑해에 이르는 전선의 남쪽에 걸쳐 진행되었다. 독일군과 추축국의 100개 사단과 100만에 이르는 군대는 전선의 남쪾을 따라 진군했다. 독일군은 케르치 지역을 점령하고 한달간의 포위전 끝에 러시아의 해군요새 세바스토폴을 함락했다. 이어 독일군은 이를 기반으로 동으로는 볼가강 유역, 남으로는 캅카스 쪽을 공격했다. 그러나 보로네시로의 진격이 막히자 독일의 폰 보크는 30만 명이상.. 2023. 1. 15.
[고려사] - 고려의 민족통일과 고려 초 정세, 발해의 멸망 [고려사] - 고려의 민족통일과 고려 초 정세, 발해의 멸망 신라가 힘을 잃은 뒤 후삼국 시대가 열리자 상황은 후백제에 비해 고려에게 우세하게 돌아갔다. 930년 고창 전투에 이어서 934년 운주전투에서 후백제군은 고려군에게 패배하면서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갔다. 후백제 왕실 내부에서도 갈등이 일어났다. 견훤이 넷째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면서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내분이 일어났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더 고려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동시에 926년 거란에게 멸망한 발해의 세자 대광현이 유민을 이끌고 고려에 투항하면서 고려는 발해까지 아우르게 되었다. 또한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내부의 분열로 큰아들 신검에게 피체되어 있다가 탈출하여 결국 숙적이던 고려에 의탁하였다. 나라를 세운 견훤이 상징성이 있었던 만큼.. 2023. 1. 14.
[러시아사] - 소비에트 연방과 제 2차 세계대전의 시작: 소비에트 러시아의 반격 [러시아사] - 소비에트 연방과 제 2차 세계대전의 시작: 소비에트 러시아의 반격 1941년 11월 하순 소비에트 적군은 남부전선에서 독일전선에 대한 반격을 시작했다. 독일의 전선은 매우 확대된 상태였고 조금씩 후퇴하던 적군에게 반격의 빌미를 주었다. 반격하기 시작한 적군은 곧 로스토프온돈을 탈환했다. 적군은 이어 12월 초에 중부전선에서 반격을 시작했다. 모스크바 인근에서 공방전을 벌이던 독일군은 1942년 1월 중순에는 엄청난 손실과 동시에 후퇴하기시작했다. 독일군은 겨울전에 전쟁을 끝내고 러시아를 전쟁에서 패퇴시킨다는 계획이었으므로, 월동준비가 전혀되지 않았다. 겨울을 위해 지연전을 벌였던 적군의 계획은 적중했다. 독일군은 패퇴했고 적군은 모자이스크를 탈환하면서 모스크바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을 제거.. 2023. 1. 13.
[한국사] - 후삼국시대의 시작과 왕건의 등장 [한국사] - 후삼국시대의 시작과 왕건의 등장 9세기 들어 신라는 하대라고 불리는 쇠락의 시기가 시작된다. 중앙의 지배력이 미치는 곳은 오직 경주 일대에 국한되었고 그곳을 벗어난 각 지방에서는 농민 봉기와 지방 호족들의 할거로 인하여 신라는 더 이상 국가라고 부를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곳곳에서 일어난 반란 세력들 중 체계적인 조직을 정비한 곳은 견훤과 궁예였다. 이들은 각지에 산재하는 호족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렇게 모인 호족들을 기반으로 체계적인 세력을 형성했고 결국에는 국가체제를 세웠다. 지금의 전라도를 기반으로 성장한 견훤은 무진주에서 농민 반란군을 흡수하여 자신의 세력을 형성했고, 곡창지대인 완산주 지역으로 도읍을 옮겨 900년에는 나라를 세우고 후백제를.. 2023. 1. 12.
[러시아사] - 소비에트 연방과 독소전쟁 - 독일의 동부전선 침공 [러시아사] - 소비에트 연방과 독소전쟁 - 독일의 동부전선 침공 소비에트 연방과 히틀러는 불가침 조약을 맺었지만 히틀러는 1940년 소비에트를 공격할 마음을 먹었다. 12월에 히틀러는 이듬해 5월에 소련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독일은 당시 영국과의 공중전에서 패배했고 다음 타격을 동쪽에서 해야한다고 계산했다. 그러나 예정대로 소비에트로 진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독일군은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했고, 그리스를 공격했다. 발칸반도에서도 작전을 펴야했다. 소비에트 러시아에 대한 공격은 3주정도 지연되었고, 독일군은 6월 22일 핀란드, 루마니아 다른 부대의 지원을 받아 발트해에서부터 흑해에 이르는 거대한 전선을 따라 소비에트 러시아를 공격했다. 동부전선이 성립되는 순간이었다. 독일군이 소련을 침공한 작전의.. 2023. 1. 11.
[러시아사] - 1938년 이후 소비에트 외교정책과 제 2차 세계대전 [러시아사] - 1938년 이후 소비에트 외교정책과 제 2차 세계대전 독일에 대해서 유화책을 펼쳤던 영국과 프랑스는 다시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것을 경계했다. 그들은 1차 대전이 일어났던 상황처럼 독일을 억누르는 것은 곧 전쟁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독일에 대해서 유화책을 펼쳤다. 독일도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고, 체코 슬로바키아에서 독일 민족이 거주하는 수데텐란트를 독일에 합병하려는 히틀러는 이를 이용했다. 영국의 체임벌린과 프랑스의 달라디에는 뮌헨으로 넘어가서 히틀러 및 무솔리니와 합의했다. 이는 소련을 염두에 둔 행동이라기 보다 전쟁을 극도로 경계한 행동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소비에트는 이러한 서구의 처리방식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졌다. 소비에트는 회담에 초청받지 못했고, 서구의 진정성을 .. 2023. 1. 8.
[러시아사] - 1930년대 소비에트 연방의 외교정책과 파시스트 - 제 2차 세계대전의 서막 [러시아사] - 1930년대 소비에트 연방의 외교정책과 파시스트 - 제 2차 세계대전의 서막 1920년대 소비에트 연방의 국제적인 승인과 외교관계의 안정을 위해 노력했던 치체린 덕분에 소비에트는 1930년대 국제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 스탈린과 정치국은 이러한 안정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 1930년부터 1939년까지 외무 인민위원으로 근무했던 리트비노프는 열강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는 것을 목표로 활동했다. 소비에트는 국제 연맹에 가입했고 군비축소와 집단 안보를 강조했다. 소비에트 연방은 국제적 인정 속에서 외교관계를 수립해 나아갔다. 폴란드, 루마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 터키 등 비교적 가까운 지역의 국가들과 일찍이 1929년 리트비노프 의정서를 만들면서 국제적 인정.. 2023. 1. 7.
[한국사] - 통일신라의 전성기와 쇠락, 호족과 후삼국시대의 시작 [한국사] - 통일신라의 전성기와 쇠락, 호족과 후삼국시대의 시작 진흥왕 이후 국력을 키워 29대 무열왕 대에 삼한일통을 이뤄낸 신라는 8세기 중엽 경덕왕 대까지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평화와 번영, 안정을 누렸다. 그러나 8세기가 지나면서 천천히 국가의 기강이 무너지고 이른바 "신라 하대"로 부르는 시기로 진입했다. 경주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에서는 귀족간의 권력 쟁탈이 일어나 분열하기 시작했으며 지방에서는 호족들이 성장하여 새로운 형태로 영지화 하여 주민에 대한 직접 지배를 시작했다. 신라 하대의 사회는 통일을 이룩한 태종 무열왕의 직계 자손들이 왕권을 강력하게 휘두르던 절대왕권이 무너지고 난 상태였으므로 이후 신라의 37대 왕인 선덕왕이 죽으면서 왕위 계승을 두고 다시 분쟁이 일었다. 36대 왕인 혜.. 2023.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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