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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민수] - 건국훈장과 독립운동가들 HTML 삽입 미리보기할 수 없는 소스 [독립민수] - 건국훈장과 독립운동가들 훈격 설명 3.1절이나 광복절에 독립유공자들에게 표창을 주는 장면 한번쯤 보셨을 겁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애국장? 애족장?이 무엇인지 알고 계신가요? 오늘은 독립유공자들께서 서훈받는 건국훈장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서훈을 주는 이유 3.1절과 광복절에 시상되는 훈장을 건국훈장이라고 합니다. 사실 건국훈장은 독립운동가만 받는 것은 아닌데요. 건국훈장은 대한민국의 건국에 공로가 뚜렷하거나, 국가의 기초를 공고히 하는 데에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입니다. 등급에 따라 5가지 훈격을 나누고 공로에 따라 1949년부터 시상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장,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으로 나누어지는데 .. 2022. 12. 18.
[독립민수] - 독립군들이 대한의 독립을 위해 사용한 무기:소총 HTML 삽입 미리보기할 수 없는 소스 오늘은 독립군 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독립군들은 대한의 독립을 꿈꾸면서 만주와 간도에서 무기를 들고 젊음을 불태우셨죠. 독립군들은 다양한 종류의 소총을 사용했습니다. 국가와 같은 중앙 군수물자 공급체계가 없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겠죠. 그래서 독립군은 각 단체마다 다른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소총을 입수했고 사용했습니다. 독립군들이 사용한 소총을 알아보겠습니다. 러시아제 모신-나강 소총 독립운동가들이 사용한 소총들 중 상당수의 소총은 모신나강 소총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모신나강은 러시아의 총기제작자 모신과 벨기에 총기제작자 나강의 이름을 딴 소총입니다. 러시아 제국이 1891년 육군 제식 총기로 채택한 볼트액션 소총입니다. 러시아 제국은 1905년 러일전쟁과 세계 .. 2022. 12. 17.
[러시아사] - 소비에트 러시아의 적백내전 승리 [러시아사] - 소비에트 러시아의 적백내전 승리 1918년 여름에 처음 발발한 러시아의 적백내전은 처음에는 백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6월 말 무렵 사마라 정부의 백군은 심비르스크, 카잔, 우파를 장악했다. 적군은 반격하려했으나 체코의 지원을 받는 콜차크의 백군, 데니킨의 백군과 먼저 싸워야만 했다. 시베리아에서 진격하던 콜차크 부대는 우랄의 페름을 차지하고 볼가 강 목전에 도달했다. 이 무렵 예카테린부르크의 볼세비키는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7월 16일 니콜라스 2세와 황후, 그들의 자식들을 살해한다. 레닌의 비밀명령이라고 추정되는 이 사건으로 백군은 일련의 목표를 잃었다. 하지만 백군은 계속해서 공격해들어왔다. 1919년 봄에 데니킨의 부대는 우크라이나 전역을 점령했고, 모스크바로 진격해왔다. .. 2022. 12. 16.
[러시아사] - 소비에트 러시아의 통치와 적백내전의 시작 [러시아사] - 소비에트 러시아의 통치와 적백내전의 시작 볼셰비키들이 무력을 사용해 정권을 찬탈한데에 대해 러시아 내에서 수많은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동시에 경제는 대혼란 상태에 접어들게 된다. 1918년 여름 무렵 볼셰비키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이른바 ‘전시공산주의’(戰時共産主義, 러시아어: Военный коммунизм, Voennyi kommunizm)라고 부르는 급진적 동원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한다. 러시아는 1918년 여름부터 전면적인 내전에 돌입한다. 소위 백군이라고 불리우는 군인들은 초기에는 러시아에 굴복한 소비에트 정부에 대항하여 일어났고, 적군의 러시아 통치에 도전했다. 동시에 수많은 소수민족들은 러시아로부터 자신들의 독립을 주장하며 궐기했다. 러시아의 수많은 적들은 그들의 봉.. 2022. 12. 15.
[한국사] - 고구려 당나라 전쟁과 안시성 / 고당전쟁 / 수당전쟁 [한국사] - 고구려 당나라 전쟁과 안시성 / 고당전쟁 / 수당전쟁 고구려 정벌에 나라의 국운을 걸었던 수나라가 멸망하고 그 뒤를 이어서 당나라가 중원의 패자 등장했다. 당은 고조 이연이 618년 건국하였고, 그 이후 잠시동안 혼란해진 정국을 다스리고 내치에 신경을 쓰느라 동아시아에서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고구려 역시 수와의 전쟁으로 소모한 막대한 국력을 회복하기 위해 당과의 친선관계에 돌입했다. 수나라가 고구려를 정벌하다가 망한 걸 직접 목도한 당 역시 고구려를 무조건 적대시 한다는 것은 망국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당 태종이 즉위하면서 상황은 급변하였다. 당 내부에서 일어난 군사적인 움직임을 모두 평정한 당태종은 북에서 호시탐탐 중국을 노리는 동돌궐까지 복속시켰다. 또한 서.. 2022. 12. 14.
[러시아사] - 10월혁명과 소비에트 러시아의 등장 그리고 레닌과 ‘전시 공산주의' [러시아사] - 10월혁명과 소비에트 러시아의 등장 그리고 레닌과 ‘전시 공산주의' 볼셰비키는 2월 혁명으로 세워진 임시정부의 무능을 딛고 1917년 11월 러시아의 권력을 손쉽게 획득한다. 그러나 볼셰비키는 수년에 걸친 내전과 투쟁을 딛고서야 그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이들은 황폐화된 국가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이들은 ‘전시 공산주의'라는 극단적인 제도를 탄생시켰고 1917년부터 1921년까지 유지했다. 전시공산주의를 이끈 인물은 볼셰비키의 지도자 레닌이었다. 레닌은 10월 혁명 이후 당뿐아니라 정부도 이끌게 되었고, 소비에트 러시아의 가장 중요한 인물로 부상했다. 그는 1870년생으로 장학사 아버지를 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카잔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한 레닌은 일찍이 급진주의자가 되었고, .. 2022. 12. 10.
[러시아사] - 혁명의 나라 러시아, 두개의 혁명과 1917년 - 소비에트의 등장과 10월 볼셰비키 혁명, 레닌의 등장 혁명의 나라 러시아, 두개의 혁명과 1917년 - 소비에트의 등장과 10월 볼셰비키 혁명, 레닌의 등장 1917년 2월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사회주의자들은 착실하게 자신의 지지기반을 넓혀나갔다. 사회주의자들은 소비에트를 조직했고, 3월 1일에 사병의 권한과 권리에 관한 헌장을 발표하여 사병들에 대한 지지를 넓혔다. 이 헌장에 따르면 병사들은 대표를 선출해 구성되는 병사위원회를 설치하여 결국 소비에트는 군사 행동을 통제하는 최종권한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군대의 무기, 차량, 물자들은 장교의 통제에서 벗어나 병사 위원회의 권한에 들어오게 되었고, 사병들은 근무중이 아니면 장교에게 경례할 의무가 사라지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상트페테르부르크(페트로그라드)에서 일어나자 러시아 전역에서 이러한 소비에트가.. 2022. 12. 9.
[한국사] - 고구려와 수나라 전쟁, 수의 멸망 / 고수전쟁 / 수당전쟁 [한국사] - 고구려와 수나라 전쟁, 수의 멸망 / 고수전쟁 / 수당전쟁 신라가 백제를 배신하고 한강유역을 차지하면서 한반도 남쪽에서는 고구려, 신라, 백제의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그 사이 중국에서는 불열되어 있던 5호 16국의 시대가 끝나고 유목민의 후손인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였다. 수나라는 589년에 전국을 통일하고 군사력을 이용하여 대외적으로 팽창하기 시작하였다. 수나라는 고비사막 이북에서 중원을 향해 압박하던 돌궐을 여러차례 정벌하고 이간책까지 사용하여 돌궐을 동돌궐과 서돌궐로 분리시켜 약화시켰다. 강성하던 돌궐의 세력이 분열되며 약해지자 수나라는 이번에는 기수를 돌려 북쪽이 아닌 동쪽의 국가 고구려를 약화시키려 하였다. 중원을 차지한 패자가 중원 근처 거대세력을 정복하는 일은 매우 당연한.. 2022. 12. 8.
[러시아사] - 혁명의 나라 러시아, 두개의 혁명과 1917년 - 2월혁명과 로마노프 가문의 통치 종식 [러시아사] - 혁명의 나라 러시아, 두개의 혁명과 1917년 - 2월혁명과 로마노프 가문의 통치 종식 갑작스러운 대중 혁명으로 인해 제국정부는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소멸되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혁명으로 인해 수도인 상트페테부르크(페트로그라드)는 폭동과 시위로 인해서 혼란에 휩싸였다. 수도는 식량 부족사태에 항의하는 노동자들과 늘어가는 파업자수로 인해서 인산인해였고, 파업과 시위현장에서 노동자를 탄압하기 위해 파견된 군병력은 오히려 대중들에게 동조하면서 사태는 심각해졌다. 수도에는 더 이상 예비병력이 없었다. 당시 니콜라이 2세는 전선에 가있었기에 다른 지역에서 군대를 동원하여 수도로 진격시키지 못했고, 결국 수도에서 제국정부의 권위는 쉽게 무너졌다. 많은 제국의 관리들은 몸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1.. 2022. 12. 5.
[러시아사] - 제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라스푸틴과 1917 러시아 혁명 [러시아사] - 제 1차세계대전과 러시아, 라스푸틴과 1917 러시아 혁명 제1차 세계대전은 장기적으로 벌어진 최초의 군사충돌로, 유럽의 사회 경제뿐 아니라 그간 축적된 기술과 기계화 된 군사력, 인력이 맞붙어 충돌한 전례없는 전쟁이었다. 전화의 소용돌이는 유럽대륙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러시아는 물론 어느 국가도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폭력이 그들을 감싸나갔다. 전쟁이 발발한 직후 러시아 내부의 항의는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대중의 적대감은 그들의 적인 외부를 향했다. 그러나 이러한 애국주의적, 민족적 단결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독일에 대한 적개심이 차르정부에대한 충성심으로 환원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이 전에 있었던 국민을 정부의 소모품으로 여기는 차르정부의 태도와 더 이상 이를 좌시하지 않는.. 2022. 12. 1.
[러시아사] - 니콜라이 2세 치하 러시아의 외교 (1905 -1914) [러시아사] - 니콜라이 2세 치하 러시아의 외교 (1905 -1914) 제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다른 유럽열강과 마찬가지로 러시아도 세계대전에 얽혀들어갔다. 차르정부는 1914년 여름 세르비아를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세계대전의 한 축이 되었다. 사실 러일전쟁에 러시아가 패배한 이후 독일과 러시아는 그다지 친밀한 관계가 아니었다. 게다가 러시아와 오스트리아는 사실상 단교에 가까운 상태였다. 그와 동시에 러시아와 프랑스의 관계는 매우 돈독해진 상태였다. 여기에 영국과 러시아의 협상이 성립되었다. 1907년 8월 31일에 조인된 영국과 러시아의 합의는 러시아 외교정책에 있어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양국은 전통적으로 극단으로 치달았던 전력을 갖고있었으나 이 합의를 통해 상호 우호적인 상태를 유지시킬 .. 2022. 11. 30.
[러시아사] - 니콜라이 2세 치하 1905년 러시아 혁명과 러시아 입헌체제 [러시아사] - 니콜라이 2세 치하 1905년 러시아 혁명과 러시아 입헌체제 1905년 러시아에 있었던 혁명은 어쩌면 예견되어 있었던 사건일지도 모른다. 19세기를 마치고 20세기로 넘어가는 세기의 전환기에서부터 1차대전 직전까지 러시아는 위기이자 기회였던 시기이다. 러시아 사회는 입헌군주주의자, 공화주의자, 개혁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이 다양하게 혼재했고, 노동자들은 삶을 지속하기위해 시위와 파업을 진행했다. 러시아 내부는 통일되지 못했고 혼란스러웠으며 대외적으로는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배함에 따라 시국은 어지럽게 돌아갔다. 결국 러시아 정부는 이런 내부의 갈등과 외부의 위협을 보듬지 못하고 1905년 혁명을 맞이한다. 러시아 정부는 내부의 갈등을 억압적인 폭력으로 억누르려했고 이는 결국 혁명의 시발점이 되.. 2022.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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