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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 광해군의 즉위와 인조반정, 폐모살제의 뜻 [조선사] - 광해군의 즉위와 인조반정, 폐모살제의 뜻 광해군은 1575년 선조와 후궁 공빈 김씨의 사이에서 둘째 서자로 탄생하였다. 선비의 정비인 의인왕후가 슬하에 자녀가 없었고, 장남이자 동복형인 임해군이 있었지만 그는 포악한 성정으로 인해서 왕이 될 재목이 되지 못했다. 또한 인빈 김씨의 소생인 의안군, 신성군 모두 일찍 요절하여 광해군의 왕위 계승서열을 능가하는 사람은 없었다. 선조의 적자 영창대군이 있었으나 그는 나이가 어렸고, 당시 임진왜란이라는 특수상황에서 분조 활동까지 거치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광해의 왕위계승을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임진왜란 발발 이후 선조는 파천과 동시에 평양에서 광해를 세자에 책봉하였다. 그리고 선조와 함께 의주로 피난하다가 영변에서 갈라졌다. 광해는 평안도, 강원도.. 2022. 11. 28.
[한국사] - 신라의 발전과 부흥, 진흥왕의 영토확장 [한국사] - 신라의 발전과 부흥, 진흥왕의 영토확장 신라는 삼국시대를 이루는 고구려, 백제보다 전성기가 늦었다. 한반도 남쪽에 위치한 탓에 중국과의 교류가 적었고, 삼국 중 가장 발전이 뒤떨어졌던 신라는 6세기에 접어들면서 발전의 기반을 다져나갔다. 6세기 초 무렵 지증왕 때에는 우경을 실시하며 농업생산이 크게 늘어났다. 농기구가 개량되고, 소를 농사에 사용하는 우경이 본격화 되면서 생산량이 증대되었고, 또한 귀족들의 무분별한 순장을 금지하면서 노동력의 무의미한 손실이 적어졌다. 또한 지증왕대에 국호 신라를 정식으로 사용하였으며 대군주를 뜻하던 마립간이라는 칭호 역시 중국식 칭호를 받아들여 왕(王)으로 바꾸었다. 지증왕이 고대국가 신라의 기틀을 세웠다면 그 다음 왕인 법흥왕은 국가 내적인 체제를 완비하.. 2022. 11. 26.
[한국사] - 사로국의 등장과 신라의 건국, 발전 [한국사] - 사로국의 등장과 신라의 건국, 발전 사로국은 훗날 삼국중 하나로 발전하는 신라의 옛 이름으로 한반도 동남부에 위치한 경주 평야를 중심으로 발전한 진한의 소국 12국중 하나이다. 신라는 석, 박, 김 3성의 시조설화에서 나타나듯이 여러 세력 집단이 연합해 건국한 국가이다. 신라의 건국 설화에 따르면 사로국에 살던 6촌의 우두머리들이 하늘에서 내려 온 박혁거세를 왕으로 받들어 건국한 나라라고 한다. 여기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마와 난생설화가 추가된다. 이 사항은 신라는 박혁거세라는 외부의 세력이 기존 토착세력인 사로국 6촌과 함께 연합하여 건국한 나라라는 사실을 알게해준다. 신라에 이주한 외부세력인 이주민들은 철제 도구를 다를 줄 알았고, 이들이 가진 문화는 토착세력에 큰 영향을 주었고 지배 .. 2022. 11. 26.
[한국사] - 백제의 천도와 쇠락, 웅진시대와 사비시대 백제는 국가의 정비가 대략적으로 마무리되는 4세기에 백제는 관등제를 확충하고, 왕위계승도 부자상속으로 바꾸어 위계를 공고히 했다. 그러나 고구려의 광개토왕이 4세기 후반, 5세기 초반에 확충된 군사력으로 남방정책을 추진하자 백제는 급속히 쇠락하였다. 그러다가 475년 지금의 위례성을 빼앗기고 웅진으로 도읍을 천도할 수 밖에 없었다. 백제의 웅진천도는 고구려의 한성점령에 의해 단시간에 이루어진 급작스러운 천도였다. 이러한 웅진천도의 배경에는 당시 개로왕대 백제에서는 무모한 권력행사로 백제 지도층 분열이 원인였다. 게다가 백제가 고구려와 북위를 둘러싸고 펼친 외교전에서 실패한 것이 주효했다. 백제의 개로왕은 472년 북위에 고구려를 공격할 원군을 요청하였는데 이러한 백제의 외교는 고구려를 자극하는 결과를 낳.. 2022. 11. 7.
[한국사] - 백제의 전성기 [한국사] - 백제의 전성기 백제는 8대 고이왕대를 거쳐 4세기 근초고왕 때에 전성기를 맞이하여 영토를 크게 확장시켰다. 고이왕은 백제의 체제를 정비하고 중앙집권에 힘써 백제의 기틀을 잡고 발전을 이끌었다. 이러한 백제의 성장은 고이왕 이후의 왕들인 책계왕, 분서왕, 계왕으로 이어지며 이들의 노력은 13대 근초고왕대에 이르러 대대적인 정복사업으로 나타났다. 근초고왕은 동쪽 낙동강 유역과 전라도, 지리산 일대에서 가야의 소국을 정복하고 영산강 유역의 마한 소국들을 정복했다. 가야를 흡수하므로 인해 영토를 남해안까지 확대하였다. 당시 전라도 지역은 여전히 마한의 전통을 가진 소국들이 존재하고 있었고, 백제의 중앙집권 체제에 들어오지 않은 소국이 산재하고 있었다. 이곳에 근초고왕은 대외팽창을 통해 백제의 영향.. 2022. 10. 6.
[한국사] - 백제의 성립과 마한 백제의 지배층은 고구려에서 기원한다. 본디 마한은 목지국을 수장으로 소국들이 모인 연맹체였으나, 백제가 마한내에서 영향력을 넓히면서 목지국은 마한 수장의 자리를 내어놓게 되었다. 훗날 마한을 장악하는 백제는 고구려 남쪽 마한지역 소국에서부터 출발하였다. 청동기 시대부터 한반도 북방에서 수 많은 유이민이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들 중 고구려에서 내려온 유이민들 중 일부가 한강 유역에 내려와 세운 나라가 백제이다. 백제의 건국 신화에 따르면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왕자가 고구려로 와 태자가 되자, 고구려 태생인 왕자 비류와 온조가 고구려에서는 더 태자가 되지 못함을 알고 세력을 이끌고 내려와 각각 미추홀과 위레에 자리잡았다고 한다. 미추홀에 자리를 잡은 비류의 세력은 차후에 온조의 백제.. 2022. 9. 29.
[한국사] - 가야 제국(諸國)의 성립과 쇠락 [한국사] - 가야 제국(諸國)의 성립과 쇠락 가야는 낙동강 서쪽 지방의 여섯 개의 연맹체로 건국되었다. 낙동강 서안은 작은 분지지형이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지형으로 구성되어 커다란 세력이 나타나기 어려웠다. 낙동강의 동쪽은 사로국, 즉 신라가 발흥하고 있었다. 가야의 건국 설화에는 가야 아홉 마을의 우두머리들이 무리를 이끌고 구지봉에 올라가 구지가를 부르면서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알을 얻었다고 한다. 그 알에서 여섯 아이가 태어났고 그들이 자라 가야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가야 연맹체의 6가야 수장을 의미하는 존재였다. 6가야 중 가장 먼저 국력을 키운 것은 김해의 금관가야였다. 낙동강 유역의 하류 충적평야에서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발달한 금관가야는 낙랑군, 왜의 교역의 중간지이자 중심지가 .. 2022. 9. 16.
[러시아사] - 러일전쟁과 니콜라이 2세의 러시아 [러시아사] - 러일전쟁과 니콜라이 2세의 러시아 러시아는 극동에서 공격적이고 모험적인 팽창을 계속해서 진행해왔다. 여기에는 1891년부터 1903년에 부설된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대표적이다. 만주와 중국, 한국을 연결하고 간접적으로 일본까지 러시아의 영향력을 미쳤던 철도는 극동지방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예였다. 이에 만주로의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던 일본은 이러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가만히 좌시하지 않았다. 당시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한 근대화 성공으로 1894년에 있었던 청일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동북아시아에서 자신의 패권을 위시했다. 청일전쟁의 마무리를 짓는 시모노세키 조약에서 일본이 만주 진출을 염두에 두고 랴오둥 반도를 조차하려 하자, 러시아는 앞서서 프랑스, 독일과 함께 이러한 일본의.. 2022. 9. 15.
[한국사] - 고구려의 영토팽창과 전성기, 광개토대왕의 등장 고구려는 백제와의 평양성 전투에서 고국원앙의 전사 이후 내부적인 정비를 마치고 다시금 영토 팽창을 시작했다. 이는 당시 중국이 분열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고구려는 백제와 신라의 삼국간의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으면서 5세기에 최전성기를 펼쳤다. 이때가 그 유명한 광개토왕, 장수왕, 문자왕의 치세로 고구려는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하고 삼국시대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였다. 고구려의 광개토왕은 18세의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올라 안정된 정치 기반을 바탕으로 대대적인 정복사업을 펼쳤다. 북으로는 거란의 일파인 비려를 정멀하고 요하를 넘어 요동을 점령해 영유권을 확보했다. 고구려는 이 원정에서 600-700여개에 달하는 촌락을 파괴했다. 북쪽 변경을 정비한 이후 기수를 남으로 돌렸다. 고국원왕이 근초고왕에 의해 .. 2022. 9. 14.
[러시아사] - 차르 니콜라이 2세의 등장과 반개혁정치 [러시아사] - 차르 니콜라이 2세의 등장과 반개혁정치 알렉산드르 3세가 서거하자 그의 장남인 니콜라이 2세가 1894년 러시아의 차르로 즉위하였다. 그는 1868년생으로 최후의 차르로 불리우는데, 당시 니콜라이는 러시아를 둘러싸고 돌아가는 국제적인 정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차르를 기반으로 한 전통적인 권력 개념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니콜라이는 자신, 즉 통치자는 신에의해서 축복 받고 있으며 자신의 국민들과 특별한 유대를 맺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전통주의적 시대의 복식과 정치질서를 추구했다. 니콜라이는 러시아의 전통에 반하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었으며 반개혁적 정치질서를 가지고 통치를 진행했다. 니콜라이 3세는 부친의 반동적인 정책을 완화 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는데 이러한 기대.. 2022. 9. 13.
[러시아사] - 알렉산드르 2세의 암살과 알렉산드르 3세의 즉위 [러시아사] - 알렉산드르 2세의 암살과 알렉산드르 3세의 즉위 크림전쟁의 패배 이후 러시아의 개혁에 착수했던 알렉산드르 2세는 때때로 그 개혁에 의구심을 가지기도 하였으나 계속해서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러시아의 근대화를 위해 노력했으나 그의 개혁이 모두에게 달가운 것은 아니었다. 1881년 알렉산드르 2세는 의회를 개설해 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여 의회 기구를 개설하기 위해 마차를 타고 궁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날 공화주의자(나로드니키) 인민의 의지당이 계획한 폭탄 테러에 맞닥뜨리게 된다. 공화주의자들에 의해 첫번째로 투척된 폭탄은 호위병과 마부에게만 손상을 입혔다. 황제의 마차는 나폴레옹 3세가 선물한 방탄마차였기에 첫번째 폭탄에 의해 황제가 입은 피해는 전무했다. 그러나 상황을 살펴보고 다친 .. 2022. 9. 4.
[한국사] -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한국사] -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조선이 멸망한 108년 이후 조선의 영역에서 여러 나라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조선의 강역이었던 압록강 중류 지역에서 거주하던 맥족이 새로운 정치체제를 수립하고 고구려를 건국하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기원전 37년 경 성립된 고구려는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킨 이후에 설치한 현도군을 몰아내며 5부라는 연맹체를 구성하여 국가를 성립했다. 고구려의 시조로 일컬어 지는 사람은 주몽이다. 기원전 1세기경 북쪽에 위치한 부여에서 자란 주몽은 무리를 이끌고 부여에서 남쪽으로 이주해 세력을 만들었고 고구려 지역의 토착민인 소노부를 제압하고 계루부 소속으로 연맹체에 속해 주도권을 장악했다. 고구려의 연맹체는 여러 소국과 집단으로 점철되어있었으나 결국 총 5개의 집단으로 정리되.. 2022.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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