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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사

[중앙아시아사] - 몽골제국의 칸국들: 훌레구 울루스 (일 칸국)

by Timemapcatographer 2022.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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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사] - 몽골제국의 칸국들: 훌레구 울루스 (일 칸국)

일 칸국

 

우구데이 가문의 칸과의 경쟁을 통해 왕위에 오른 툴루이의 아들 뭉케 칸은 자신의 동생인 훌레구에게 줄 땅을 분봉하기 위하여 중동 원정을 명령한다. 1255년 훌라구는 군사를 이끌고 중동원정을 시작한다. 이 원정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랍 이슬람권의 중심지인 아바스 왕조의 수도 바그다드를 정복하는 것이었다. 훌레구는 1255년 출발하여 중앙아시아의 여러 도시들을 정복하고 2년 뒤인 1257년 11월 훌라구의 군대는 마침내 바그다드에 도착하여 성을 포위했다. 아바스 왕조의 마지막 칼리파 알 무스타심은 몽골군에 의해 살해당했다. 바그다드를 정복한 몽골 군은 도시를 무슬림을 학살하고 도시는 약탈한 후 불태웠다. 이렇게 아바스 왕조는 멸망하였다.

훌라구, 훌레구 칸

아바스 왕조와 바그다드를 정복한 훌라구 칸은 시리아 지역으로 원정을 나섰다. 당시 시리아 해안 지역에는 십자군이 세운 기독교 국가들이 남아있었다. 십자군 원정 이후 십자군이 세운 공국 중 하나인 안티오크 공국보에몽 6세는 지금이 이슬람 세력을 물리칠 기회라고 판단하여 몽골군에 합류했다. 십자군 세력과 연합한 몽골군은 1260년 이들의 지원을 받아 파죽지세의 기세로 알레포를 점령하고 시리아 내 여러 군소정권을 복속시켰다. 하지만 1260년 봄, 뭉케 칸의 사망과 그 뒤로 이어진 내분과 후계자 선정문제 때문에 훌레구는 중동에서 몽골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훌라구는 시리아를 떠나며 자신의 군대를 장군 키트부카에게 맡겼다. 키트부카는 훌라구의 군대를 이어받아 다마스쿠스를 점령하고 시리아 지역의 아이유브 술탄 안나시르 유수프를 해치우고 시리아를 완전히 장악했다.

맘루크 기병대

시리아를 완전히 장악한 키트부카는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에 항복 권고를 보냈으나 당시 이집트 맘루크 왕조의 술탄인 쿠투즈는 이를 거부하고 바이바르스와 연합하여 몽골장군 키트부카와 맞섰다. 마침내 몽골 군과 맘루크 왕조 군은 아인잘루트에서 크게 격돌했는데 이 전투에서 몽골군은 전멸하였으며 총사령관인 키트부카도 전사하게 된다. 1260년에 벌어진 이 전투를 아인잘루트 전투라고 한다.

아인잘루트전투 개요도

아인잘루트 전투의 참패 이후 전황은 결정적으로 바뀌어 몽골군은 이집트 군에게 밀려나 이스라엘을 내주고 티그리스 강 이북으로 북상하였으며 아인잘루트 전투 승리의 주역인 바이바르스는 몽골에 이어 경쟁자인 쿠투즈도 제거하고는 맘루크 왕조의 유일한 권력자로 집권했다. 이후 일 한국과 맘루크 왕조의 국경선은 시리아의 티그리스 강으로 결정되었으며 약 80여 년 동안 그대로 유지되었다.

맘루크 병사의 기병훈련

훌레구 울루스는 엄밀하게 말하면 정식으로 칸에게 인정받은 울루스가 아니었기에 정통성 문제에서 항상 약자에 위치할 수 밖에 없었다.ㄷ 따라서 주치 울루스에서는 훌레구 울루스를 적대하기도 하였다. 훌레구의 명령에 따라 여러 울루스에서 차출된 원정군들은 각기 다른 출신을 가졌지만 훌레구의 지휘 아래 주치 출신 세력을 축출 하였다. 또한 그들을 훌레구 자신의 병사로 만들었다. 이후 훌레구와 그 후계자들은 서아시아 중동지역을 지배하였지만 주치 울루스, 차가다이 울루스등에서는 그 합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같은 톨루이 가문을 뿌리로 둔 칸 울루스의 후원과 인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입장이었다. 그래서 훌레구 울루스의 후계자들은 다른 주치나 차가다이 울루스와 다르게 칸의 임명장을 받은 이후에나 공식적인 즉위식을 올리고 즉위하였다. 국경을 맞댄 타 울루스와 적대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국제적 고립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훌레구 울루스는 칸 울루스와 최대한 많이 교류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사신을 교환 하였다.

일한국의 7대 칸 가잔 칸

훌레구 울루스들의 칸들은 유목민 특유의 이동생활을 계속했다. 칸들의 특성과 기호에 따라 주요 근거지는 마라가, 타브리즈, 술타니야등으로 바뀌었다. 몽골과 투르크 군사귀족들이 지배층을 이루었고 이란계 관리와 상인등이 사회를 이루었다. 훌레구 울루스 역시 잦은 계승분쟁으로 인해 국력을 소모하였는데 특히 훌레구의 장자 아바카가 사망한뒤 그의 동생인 훌레구의 막내 테구데르와 아바카의 아들 아르군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고 5대 칸인 게이하투 사후에는 또 다시 분쟁이 일어났다. 7대 칸인 가잔 칸 이후 권력은 곧 권신들의 손으로 넘어갔고 마지막 칸 아부 사이드는 비교적 오랜시간 통치를 했지만 그것은 권력이 없는 허수아비 였기에 가능한 기간이었다. 9대 칸인 아부사이드 칸이 1335년 사망한뒤 울루스는 해체되었고 각지에서 부족군대를 기반으로 군사귀족들이 발호하며 지역정권이 생겨났다. 10대칸 아르파 케운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실질적 칸은 나오지 못했고 명목상의 칸만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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