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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 청대 옹정제의 개혁과 개토귀류 [중국사] - 청대 옹정제의 개혁과 개토귀류 청은 강희제 연간에 전성기를 누렸다. 강희제는 61년이라는 오랜기간동안 통치하며 안정된 황권을 바탕으로 국가를 경영할 수 있었다. 1722년 강희제가 사망하면서 그의 후임으로 4남인 옹정제가 즉위하였다. 옹정제는 치밀하면서 성실하기까지 한 성격으로 자신의 정치적 세력을 꾸준히 모으며 황제가 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 후 강희제가 붕어하자  황좌를 놓고 대립각을 세우던 8황자, 9황자 10황자, 14황자를 창춘원에 감금시켜버리고 대신들의 추대를 받아 황좌에 오른다. 옹정제의 통치기간은 겨우 13년이나 강희제 연간 말기에 나타나던 사회의 혼란상을 다시 바로잡은 것으로 그 업적을 치하하는 평이 많다. 그리고 뒤이어 나타나는 건륭제의 치세를 준비한 시기라고 평하기.. 2024. 9. 19.
[중국사] - 청의 전성기와 강희제의 시대 [중국사] - 청의 전성기와 강희제의 시대 후금을 청으로 만들고 기틀을 다진 홍타이지가 죽고 그의 아들인 순치제가 산해관을 돌파한다. 순치제는 어린나이에 즉위하여 숙부인 도르곤의 섭정을 받았으나, 멸망한 명의 뒤를 이어서 청의 내실을 공고히하고 통일국가로서 기틀을 마련하였다. 순치제가 산해관을 돌파한 이후 중원으로 들어온 청은 투항한 명의 장군 오삼계, 상가희, 경계무를 왕으로 봉하고 막대한 재정을 지원하였다. 순치제 이후 1661년 청의 4대 황제 강희제가 8세의 어린나이로 즉위한다. 강희제는 14살의 나이에 친정을 시작하여, 내치와 외정 양 측면에서 눈부신 업적을 쌓았다. 강희제가 있었기에 청은 중국대륙을 온전히 지배할 수 있었다. 강희제는 이들과 함께 남아있는 반청세력을 청소했다. 그러나 반청세력이.. 2024. 9. 18.
[중국사] - 명나라 말기 이자성의 반란과 청나라의 명나라 정복 [중국사] - 명나라 말기 이자성의 반란과 청나라의 명나라 정복 명나라가 세워진 이후 200년이 지나 16세기 말로 들어가면서 명의 사회모순은 에 달했다. 16세기 중반 명의 재상 장거정의 개혁으로 사회 혼란을 바로잡고 민생안정을 도모했던 명이지만, 장거정이 죽자 관료와 환관, 신사층의 불만이 쏟아지면서 명의 체제는 천천히 붕괴되어 갔다. 특히 보바이의 난, 임진왜란, 파주토사 양응룡의 반란 등 다양한 반란이 일어나면서, 명은 장거정 사후 다시금 재정적자에 허덕이게 되었다. 재정적자에는 황실 유지비용도 한몫하였다. 만력제를 비롯한 황족들의 사치 또한 적자의 원인이되었다.  이러한 명의 적자재정을 메우기 위해서 전국으로 파견된 환관들은 막대한 권한을 휘둘렀다. 지방의 은광을 개발해 세금을 징수하는 것이 파.. 2024. 8. 18.
[중앙아시아사] - 청제국의 중앙아시아 정복과 야쿱 벡의 반란 청 제국은 러시아와 네르친크스 조약으로 동쪽의 우환을 제거했다. 그리고 서쪽으로 눈을 돌려 건륭제 때인 1757년 준가르의 아무르사나를 조혜로 하여금 격파하고 난 뒤 톈산 남북의의 초원과 사막지대를 모두 정복하였다. 그리고 이곳을 새로운 영역이라는 뜻의 신강(新疆)이라고 불렀다. 신강이라는 이름은 청이 새로운 영토를 얻으면 붙이는 일반명사였다. 이곳은 "서역신강"이었다. 청은 기존의 편제와 달리 신강은 성으로 편제하지 않고 군사적인 특별구역으로 설정하였다. 청 제국에서 멀리 떨어진 만큼 민관이 아닌 군관을 배치하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또한 이 구역을 천산을 기준으로 북로, 남로, 동로로 분할하여 통치하였다. 그리고 이곳에 다시 유목민이 정착할 수 없게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둔전과 요새를 건설하였다. 또한.. 2022. 8. 18.
[중앙아시아사] - 여진의 흥기와초원의 통일 16세기 후반 여진은 통합되지 않고 건주여진, 해서여진, 야인여진 등 3개의 세력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중 건주여진에서 다시 5부로 나뉘어지고 5부 중 완안부에 속했던 누르하치는 건주여진의 나머지 4부를 모두 통합하고 건주여진의 지배층으로 부상했다. 누르하치가 건주여진을 통일하자 건주여진의 통일에 놀란 해서여진 4부(여허부, 하다부, 울라부, 호이파부)는 몽골에 속한 호르친부와 내할하 5부 등과 연합하여서 1593년 누르하치의 건주여진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이 전투에서 누르하치는 연합 세력을 물리치고 승리하였다. 할하 몽골인들은 1603년 건주여진의 누르하치에게 칸이라는 존호를 바쳤고 1616년 만주에서 여진을 완전히 통합한 누르하치는 청 제국의 전신인 후금을 건국한다. 1626년 누르하치의 뒤를.. 2022.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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