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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5

[한국사] - 고구려 당나라 전쟁과 안시성 / 고당전쟁 / 수당전쟁 [한국사] - 고구려 당나라 전쟁과 안시성 / 고당전쟁 / 수당전쟁 고구려 정벌에 나라의 국운을 걸었던 수나라가 멸망하고 그 뒤를 이어서 당나라가 중원의 패자 등장했다. 당은 고조 이연이 618년 건국하였고, 그 이후 잠시동안 혼란해진 정국을 다스리고 내치에 신경을 쓰느라 동아시아에서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고구려 역시 수와의 전쟁으로 소모한 막대한 국력을 회복하기 위해 당과의 친선관계에 돌입했다. 수나라가 고구려를 정벌하다가 망한 걸 직접 목도한 당 역시 고구려를 무조건 적대시 한다는 것은 망국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당 태종이 즉위하면서 상황은 급변하였다. 당 내부에서 일어난 군사적인 움직임을 모두 평정한 당태종은 북에서 호시탐탐 중국을 노리는 동돌궐까지 복속시켰다. 또한 서.. 2022. 12. 14.
[한국사] - 고구려와 수나라 전쟁, 수의 멸망 / 고수전쟁 / 수당전쟁 [한국사] - 고구려와 수나라 전쟁, 수의 멸망 / 고수전쟁 / 수당전쟁 신라가 백제를 배신하고 한강유역을 차지하면서 한반도 남쪽에서는 고구려, 신라, 백제의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그 사이 중국에서는 불열되어 있던 5호 16국의 시대가 끝나고 유목민의 후손인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였다. 수나라는 589년에 전국을 통일하고 군사력을 이용하여 대외적으로 팽창하기 시작하였다. 수나라는 고비사막 이북에서 중원을 향해 압박하던 돌궐을 여러차례 정벌하고 이간책까지 사용하여 돌궐을 동돌궐과 서돌궐로 분리시켜 약화시켰다. 강성하던 돌궐의 세력이 분열되며 약해지자 수나라는 이번에는 기수를 돌려 북쪽이 아닌 동쪽의 국가 고구려를 약화시키려 하였다. 중원을 차지한 패자가 중원 근처 거대세력을 정복하는 일은 매우 당연한.. 2022. 12. 8.
[한국사] - 백제의 천도와 쇠락, 웅진시대와 사비시대 백제는 국가의 정비가 대략적으로 마무리되는 4세기에 백제는 관등제를 확충하고, 왕위계승도 부자상속으로 바꾸어 위계를 공고히 했다. 그러나 고구려의 광개토왕이 4세기 후반, 5세기 초반에 확충된 군사력으로 남방정책을 추진하자 백제는 급속히 쇠락하였다. 그러다가 475년 지금의 위례성을 빼앗기고 웅진으로 도읍을 천도할 수 밖에 없었다. 백제의 웅진천도는 고구려의 한성점령에 의해 단시간에 이루어진 급작스러운 천도였다. 이러한 웅진천도의 배경에는 당시 개로왕대 백제에서는 무모한 권력행사로 백제 지도층 분열이 원인였다. 게다가 백제가 고구려와 북위를 둘러싸고 펼친 외교전에서 실패한 것이 주효했다. 백제의 개로왕은 472년 북위에 고구려를 공격할 원군을 요청하였는데 이러한 백제의 외교는 고구려를 자극하는 결과를 낳.. 2022. 11. 7.
[한국사] - 고구려의 영토팽창과 전성기, 광개토대왕의 등장 고구려는 백제와의 평양성 전투에서 고국원앙의 전사 이후 내부적인 정비를 마치고 다시금 영토 팽창을 시작했다. 이는 당시 중국이 분열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고구려는 백제와 신라의 삼국간의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으면서 5세기에 최전성기를 펼쳤다. 이때가 그 유명한 광개토왕, 장수왕, 문자왕의 치세로 고구려는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하고 삼국시대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였다. 고구려의 광개토왕은 18세의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올라 안정된 정치 기반을 바탕으로 대대적인 정복사업을 펼쳤다. 북으로는 거란의 일파인 비려를 정멀하고 요하를 넘어 요동을 점령해 영유권을 확보했다. 고구려는 이 원정에서 600-700여개에 달하는 촌락을 파괴했다. 북쪽 변경을 정비한 이후 기수를 남으로 돌렸다. 고국원왕이 근초고왕에 의해 .. 2022. 9. 14.
[한국사] -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한국사] -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조선이 멸망한 108년 이후 조선의 영역에서 여러 나라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조선의 강역이었던 압록강 중류 지역에서 거주하던 맥족이 새로운 정치체제를 수립하고 고구려를 건국하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기원전 37년 경 성립된 고구려는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킨 이후에 설치한 현도군을 몰아내며 5부라는 연맹체를 구성하여 국가를 성립했다. 고구려의 시조로 일컬어 지는 사람은 주몽이다. 기원전 1세기경 북쪽에 위치한 부여에서 자란 주몽은 무리를 이끌고 부여에서 남쪽으로 이주해 세력을 만들었고 고구려 지역의 토착민인 소노부를 제압하고 계루부 소속으로 연맹체에 속해 주도권을 장악했다. 고구려의 연맹체는 여러 소국과 집단으로 점철되어있었으나 결국 총 5개의 집단으로 정리되.. 2022.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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