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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족4

[중앙아시아사] - 토번왕국의 등장, 당의 서역지배 당은 서돌궐을 복속시키고 타림분지 도시국가들을 장악하면서 서역지배를 완성하는듯 했으나, 다시금 세력의 도전에 직면해야했다. 티베트 고원에 위치한 토번 왕국이 그 주인공이다. 중국의 기록 속에서 토번으로 나오는데 토번은 티벳을 옮겨 기록한것이다. 토번 왕국은 7세기 티베트 라싸를 중심으로 건설되어티베트 고원지대의 여러 민족들을 흡수통합하면서 9세기 중반까지 국가의 명맥을 유지했다. 토번 왕국의 건설자는 송첸감포였는데 그는 고원을 통일한뒤 634년 당나라와 접촉하였다. 그는 선비족 탁발부의 후예로 당나라 공주와 혼인하여 국격을 높이려했으나 주변 유목민인 토욕혼의 방해로 성사되지 않았다. 하여 송첸감포는 636년 군대를 이끌고 토욕혼을 정발하고 당항, 백란등의 유목부족들을 차례로 정벌하였다. 이후 당의 서.. 2022. 4. 21.
[중앙아시아사] - 중국 한족 왕조의 몰락과 유목민족의 중국 이주 [중앙아시아사] - 한인 왕조의 혼란과 유목민족의 이주 후한 말의 환관들이 난입하는 혼란한 정치상황과 대내외 적인 군사 충돌로 인해 중국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후한이 몰락하던 2세기말부터 중국대륙의 패권을 놓고 서로 다투던 위, 촉, 오는 280년이 되에서야 진이라는 새로운 나라에 의해 혼란을 끝낸다. 진은 촉한의 제갈량의 북벌을 막아낸 위나라의 대신 사마의의 손자인 사마염이 건국하였다. 건국 초기에는 어진 정치로 새로운 국가를 다져나갔으나 2대 혜제대에 이르러서는 나라의 기강이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2대 황제인 혜제때에는 이러한 혼란에 말미암아 군사력을 장악하고 있던 왕들이 8왕의 난을 일으키고 국운이 기울게된다. 약 16년간 일어난 반란에 변경방비에 틈이 생기자, 만리장성 이북에 거주하던 유목민족들이.. 2022. 4. 7.
[중앙아시아사] - 동호의 후예, 유목민족 선비족 [중앙아시아사] - 동호의 후예, 유목민족 선비족 본디 선비는 동호에 속한 부족이었다. 그러나 흉노족 묵특선우에게 공격을 받고 동호는 두 갈래로 나뉘어 이주하였는데 이 두갈래가 오환과 선비로 나누어졌다. 눈강 상류의 산악지역으로 들어간 동호는 선비족이 되어 역사에 기록되었다. 발음의 음가값이 [세르비 : Servi]에 가까웠기에 기록에 선비로 옮겨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1세기 중반 선비는 오환이 한나라의 영향권 아래의 지역으로 이주하자 오환 거주하던 초원지대를 자신들이 채우기 시작하여 결국에는 동으로는 내몽골에서부터 서로는 주천과 동황에 이르기는 넓은 영역을 관할하였다. 이는 곧 선비족이 중국 북변에 넓게 분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비족은 기본적으로는 후한의 울타리로서 오환 편에 서서 북흉노의 공격.. 2022. 4. 6.
[중앙아시아사] - 북흉노의 서천, 그리고 제국의 멸망 [중앙아시아사] - 북흉노의 서천, 그리고 제국의 멸망 48년 흉노의 분열로 인해서 남흉노 선우 일축왕 비가 한에 투항였다. 신하를 칭하면서 스스로를 호한야 선우로 칭하자 흉노는 북흉노와 남흉노로 갈라지게 된다. 후한의 영내에서 북흉노와 대립하던 호한야 선우는 고비사막 북쪽에 있는 북흉노 포노선우와 대립하게 되었다. 남흉노는 후한의 물질적 지원에 힘입어 북흉노를 정복하고 고비사막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그러나 남흉노와 후한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흉노의 세력이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북흉노는 한과 계속 대립했으며 타림분지의 여러 도시들을 군사적으로 압박하여 각 도시들을 흉노의 세력권 아래에 두었다. 특히 도시 쿠차를 앞세워 야르칸드를 정벌하고 서부의 타림분지 세력권내 15개 도시국가에서 추가병력 3만을 .. 2021.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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