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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독립운동사

[독립민수] - 독립군이 사용한 기관총과 수류탄들

by Timemapcatographer 2023.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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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할 때 사용한 기관총과 수류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독립군은 일본군에 비해 소수였기에 치고 빠지는 유격전에 특화되어 있었고 타국에서 힘들게 생활하는지라 물자부족과 무기부족에 시달렸습니다.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열정은 있었지만, 강력한 화력의 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무기의 가격도 문제였지만 돈이 있다 하더라도 무기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지요. 강한 화력을 가진 기관총과 수류탄은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독립군은 무기의 수와 질, 화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소수지만 기관총을 구비해 운용했습니다. 

그러나 기관총은 운용했지만 어떤 종류의 기관총을 사용했는지 기록에 남은 것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일제 기록에는 몇정의 기관총이 있는지는 나와있지만 그 종류는 적혀있지 않죠.

오늘은 철기 이범석 장군이 남긴 ‘우등불’의 기록을 따라 독립군들은 어떤 기관총을 썼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첫번째는 러시아의 중(重)기관총 PM M1910, 러시아제 맥심기관총입니다. 

 

맥심기관총은 1884년 하이럼 맥심이 개발한 최초의 현대적 기관총입니다. 총탄의 반동을 이용해 완전자동 사격이 가능해졌고, 분당 600발이라는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발사속도를 자랑했습니다. 맥심기관총의 성능에 놀란 유럽 열강은 앞다퉈 제식무기로 채택합니다. 

 

러시아 역시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러시아는 대량으로 기관총을 구입하고, 국내생산을 목표로 영국에서 라이센스를 사들여 툴라 조병창에서 1905년 맥심 중기관총의 러시아버전인 PM M1905를 개발합니다. 여기서 약간의 개량을 거쳐 PM M1910을 운용합니다.


이 러시아제 맥심 기관총은 다른 러시아제 무기와 마찬가지로 오랜시간동안 전선에서 활약했는데, 우리 독립군도 이 기관총을 운용했습니다. 청산리 전투에 참여했던 이범석 장군은 자서전 ‘우둥불'에서 독립군이 러시아제 맥심 기관총을 3문 운용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영국제 루이스 기관총(84쪽 사진)입니다. 루이스 기관총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세계적으로 사용된 경기관총입니다. 미국에서 개발되었으나 미군 제식으로 채택되지는 않았습니다. 영국의 총기회사 BSA는 이 총을 영국군 표준탄에 맞추어 생산했고 가벼운 무게와 준수한 성능으로 1913년에 벨기에군 제식에 채용되었습니다. 뒤이어 영국군도 사용합니다.

 

루이스 기관총은 경기관총이라는 분류답게 가벼운 무게와 준수한 성능으로 수많은 군인들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제식으로 채용한 영국과 벨기에 뿐 아니라 1차 세계대전 연합국인 미국, 영국, 러시아에서 구매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체코군단도 루이스 경기관총을 사용했고 결국 북로군정서에까지 2문이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루이스 기관총은 이범석 장군 저서에 “뉘-쉬 기관총”으로 나타납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맥심 기관총의 특허를 피하기 위해 사진에서 보이는 매우 특이한 탄창 형태를 채용했고, 덕분에 식별하기 용이한 무기입니다. 자료를 찾다가 이 사진을 발견했는데요. 1920년 간도 참변 당시 일본군이 한인 마을을 공격하여 무기를 압수하고 있는 사진입니다. 압수당하고 있는 무기들 중에 루이스 기관총의 형태를 식별할 수 있었습니다. 청산리 전투 이후 북간도에 루이스 기관총이 운용되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제 기관총  M1895_콜트-브라우닝_기관총 1문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브라우닝 형제가 개발하고 콜트에서 생산했습니다. 미국에서 개발하고 생산했지만

  제식으로 채택되지는 않았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면서 캐나다, 영국, 프랑스군도 사용했고, 러시아의 적백내전에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이때 체코군단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브라우닝 콜트 기관총도 체코군단을 통해 북로군정서로 입수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독립군은 어느정도의 기관총을 운용하고 있었을까요. 1920년 8월 일제의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군정서는 7문, 대한북로독군부는 2문을 운용하고 있다고 나와있습니다.


독립군이 운용한 기관총은 매우 적은 수 였지만 무기의 수와 질에서 열세였던 독립군에게 가뭄의 단비같은 화력였습니다. 다음은 독립군의 화력을 책임졌던 또다른 무기, 수류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20년 8월경에 작성한 일제의 한 정보 기록에 독립군이 수류탄 1,550개를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이 남아있습니다. 독립군은 어떤 수류탄을 썼을까요. 홍범도 장군이 활동할 당시 사용한 탄환과 수류탄 사진이 남아있어 대략적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수류탄은 형태상 영국제 밀즈 수류탄이거나 그 복제품으로 보입니다. 밀즈 수류탄은 최초의 지연신관식 수류탄으로 영국 윌리엄 밀즈 공장에서 개발, 제조된 수류탄입니다. 만주지역 독립군 부대도 영국제 밀즈 수류탄을 2,000개 정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국제 밀즈 수류탄의 단점을 보완한 프랑스제 F1수류탄도 독립군에서 쓰였습니다. F1 수류탄은 더 단순한 형태로 생산성을 높이고 근접전에 사용하기 쉽개 개량되었습니다. 

의열단도 의거 용도로 F1 수류탄을 활용했습니다. 김상옥 의사가 종로경찰서에 투척한 폭탄 역시 이 F1 수류탄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간도와 만주에서 활동했던 독립군들은 부족한 화력을 만회하기위해 소총과 수류탄을 주력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북간도 지역 독립군 부대의 대다수는 수류탄을 활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외에도 러시아, 중국과 일본에서 복제해 사용하던 수류탄 등을 노획하거나 구입하여 사용했습니다. 1920년 8월 대한군정서는 수류탄 5상자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단체의 독립군의 수가 적더라도 수류탄으로 화력을 보충한 것이지요. 대한국민회, 대한북로독군부는 물론이고 대한신민단, 대한의민단까지도 모두 수류탄을 운용했습니다.

 

오늘은 독립군이 사용한 권총과 기관총, 수류탄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타국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의 애환이 담긴 무기를 통해 

자유로운 오늘을 감사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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