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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사/독일사

[독일사] - 프리드리히 대왕과 7년전쟁, 강대국 프로이센의 등장

by Timemapcatographer 2023.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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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사] - 프리드리히 대왕과 7년전쟁, 강대국 프로이센의 등장

 

프로이센이 열강들의 자리를 위협하는 강대국으로 떠오르면서 이를 경계하는 프랑스, 오스트리아, 러시아의 대립으로 7년전쟁이 벌어졌다. 특히 오스트리아는 슐레지엔을 회복하려 했기 때문에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에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쟁탈전이라는 이중적 관계속에 7년전쟁은 시작되었다. 

로스바흐 전투, 1757

프로이센은 수적으로 열세였다. 3개의 국가로 영토가 둘러싸인 형국이었기에 프리드리히 대왕은 기민하게 병력을 움직였다. 프로이센군은 1757년 프랑스군을 로스바흐에서 격파하고, 이어서 오스트리아 군을 로이텐에서 제압한 다음 기수를 돌려 1758년 초른도르프에서 러시아군에게 승리하였다. 세 국가의 병력이 합쳐지기 전에 각개격파하는 전술을 선택한 것이다. 

쿠네스도르프 전투, 1759

그러나 1759년 쿠네스도르프에서의 참패는 프로이센에게 위기인 상황으로 보였다. 프로이센군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172문의 대포를 상실했고, 6천명이 전사, 만 삼천명이 부상을 당했다. 수도 베를린은 위협받고 있었고, 영국의 지원은 재정적 지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의 한 축인 러시아에서 여제 엘리자베타가 죽고 표트르 3세가 즉위하면서 상황이 반전되었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열렬한 팬이었던 표트르는 즉위하면서 바로 전쟁을 그만두었다. 러시아군을 철수 시키고 바로 프로이센과 강화를 체결하였다. 

후베르투스부르크  조약(Treaty of Hubertusburg), 1763년 2월 15일, 프로이센 왕국과 오스트리아 등의 사이에 체결된 7년 전쟁의 강화 조약

 

이로써 7년전쟁의 오스트리아 동맹관계는 무너지고, 길어진 전쟁에 지친 교전국들은 1763년 후베르투스부르크 조약을 맺으면서 결국 프로이센의 슐레지엔 지방 영유를 확인하면서 전쟁을 종료했다.

 

7년전쟁을 통해 프로이센은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프리드리히는 전후 복구작업에 전념하였다. 중상주의 정책과 운하, 도로, 교량의 건설은 프로이센의 산업에 밑거름이 되었다. 그의 즉위 당시 인구는 300만에 그쳤으나 치세 말기에는 500만에 가깝게 증가하였다. 이를 두고 후세에 대왕이라는 칭호가 붙게 되었다. 

 

영국 또한 7년전쟁의 수혜국이었다. 인도와 카리브해, 북미대륙에서 영국은 프랑스에 승리하면서 식민지 쟁탈전의 최종 승리국이 되었다. 영국은 1763년 파리조약에서 프랑스로부터 캐나다, 미시시피강 동쪽, 서인도 제도, 서아프리카를 얻었으며, 에스파냐로부터 플로리다를 확보했다. 영국은 북미대륙과 인도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확보했고 대영제국으로 나아가는 기반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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