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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중국사]- 저무는 영웅의 시대, 5호 16국 시대 (오호십육국 시대)

by Timemapcatographer 2024.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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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저무는 영웅의 시대, 5호 16국 시대 (오호십육국 시대)

 

본디 중국이라고 불리는 중국에서 멀리 떨어진 북방 민족들이 살아가는 초원이 있었다.

그러나 여러가지 이유로 북방에서 중원으로 이동한 유목민족 다섯민족을 5호라고한다. 흉노, 선비, 갈, 저, 강 등 다섯 유목민족은 사마씨의 진나라에서 일어난 팔왕의 난이 종결될 즈음 각자 독자 정권을 수립한다. 

 

304년 산서 지방을 근거로 흉노의 유연이 대선우를 칭하며 한나라를 건국한다. 유연은 한고조 유방의 후예를 자처하며 漢(한)을 자처하였지만, 그 후대에 유요가 조로 국명을 고쳤다. 사천에서는 이웅이 성도왕을 자칭하면서 5호16국 시대가 열리게 된다. 유목민족들은 삼국시대로 일컬어지는 후한말기부터 내전으로 힘이 약화된 한족의 영역인 이른바 ‘중원’으로 끊임없이 유입되었다. 한무제 이후 흉노는 내분으로 인하여 사실상 한에 융화되고 있었고, 이는 다른 민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관중지역의 인구중 과반수가 이들 유목민족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민족과 한족간의 갈등 역시 첨예해지고 있었다. 

 

선우를 자칭한 한나라 유연의 후계자 유총은 310년 사마씨의 진나라 수도 낙양을 공략하여 함락시켰다. 낙양에 거주하던 3만여명을 살해하고, 황제 회제를 사로잡아 수도 평양으로 끌고갔다. 311년 유총은 회제와 서진의 신하 등 10만여명을 다시 살해했다. 이 소식을 접한 서진에서는 민제를 다시 장안에서 황제로 즉위시켰다. 그러나 이것도 316년 국호를 바꾸고 다시 공격해온 전조군에게 무너져 서진은 4대 52년만에 멸망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진나라가 멸망하면서 한족정권은 중원을 이민족인 5호에게 내어주고 남쪽으로 피난을 떠난다. 이들은 강남을 중심으로하여 새로운 진나를 건국한다. 이를 동진이라 한다. 이러한 사건을 영가의 난, 영가의 상란이라 부르는데, 이 사건은 한족의 역사에는 치욕스런 역사이지만, 당나라라는 새로운 제국의 출현과 다민족 국가인 중국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중원을 빼앗긴 한족은 안정된 곳을 찾아서 피난길에 나섰다. 이민의 주된 귀착지는 황하 남쪽의 강남이었으나 서북의 하서회랑과 동북의 만주지역도 피난민의 귀착지기 되었다. 이 가운데 주요 종점은 양주와 형주였다. 이들은 동진 왕조 건립의 주요세력이 되었고, 이후 이어진 정권인 송, 제, 양, 진 등 남조 정권 통치세력의 주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렇게 황하 남쪽이 새롭게 주목되고, 사회 주도세력이 되면서 중원에서 피어난 귀족제도는 그대로 강남에 이식되었다. 이 귀족제는 유민과 강남의 토착 호족에 의해 정착되었다. 

 

5호의 중원진출로 야기된 민족이동은 강남의 개발을 불러왔고 강남의 원주민, 즉 만족이라 총칭되는 소수민족의 출현을 불러왔다. 이들의 등장은 기존 질서를 붕괴시키기도 했고, 반란의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유민들의 강남진출로 인해 강남이 진정한 의미에서 중국의 영역이 된 것 역시 이 시기에 들어서이다. 이런 점에서 이 시대 유민의 이동이 중국 역사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5호16국 시대는 유연의 한나라가 성립한 304년에서 북위가 화북을 통일하는 439년까지의 기간을 지칭한다. 136년간의 기간동안 중원은 끊임없는 분열과 통일을 반복했다. 5호 16국 시대가 분열과 통일을 거듭하게 된 배후에는 특이한 정치체제를 들 수 있다. 이들은 농경민인 한족과 유목민을 통치하는 조직을 따로 두어 통치하였는데, 이를 호한분치라고 하였다. 또한 종실의 여러 왕이 군권을 장악하는 종실적 군사 봉건제를 실시하였다. 찢어진 권력은 국가의 통일 역량에 상당한 장애요소로 작용하여 통일 정권의 등장을 어렵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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