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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청동기-철기시대

[한국사] - 고조선의 등장과 발전

by Timemapcatographer 2022.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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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은 기원전 7세기 무렵부터 기원전 108년까지 존속한 국가이다.

 

본래의 국호는 조선이다. 1392년 이성계에 의해 건국된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후대에 옛 고(古) 한자를 넣어 고조선이라 부르게 되었다. 조선의 영역은 한반도 북부와 지금의 중국 랴오닝 성에 걸쳐서 있었다. 조선이라는 국호는 중국 한대에 쓰여진 ‘관자’라는 책에 처음 등장한다. 책의 내용이 기원전 7~6세기의 상황을 전달하는 책이므로 적어도 고조선이 그때 당시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관자'는 저자가 관중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관중의 언행을 기록한 것이며 이것은 춘추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계속해서 수정되었다. 사기에도 고조선이 등장한다.

 

당시 고조선은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와 교역을 했다고 한다. 제나라는 산둥반도에 위치한 국가로 발해만을 끼고 연안 해상무역을 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를 통해서 고조선의 문화권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다. 이후 ‘사기’와 ‘전국책’ 등에는 기원전 4~3세기 조선이 스스로 왕을 칭했다고 하며, 중국 연나라와 그 힘의 우위를 다투었다고 적혀있다. 고조선 사람들은 남만주 요동 일대와 한반도 서북부를 중심으로 살았다. 이 지역은 농경이 발달한 곳으로 주로 예족과 맥족이 인구를 구성하였다. 

 

고조선의 유물

사료의 부족으로 고조선에 대한 정확한 강역의 위치와 존속 시기는 확정할 수 없다. 그러나 처음에는 한반도 대동강 유역 자리를 잡았고, 고조선이 점차 국가로 성장하면서 세력을 넓혀 요동까지 관장하게 되었다고 본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본 글에서는 대동강 기원설을 기반으로 한다. 기원전 4세기 무렵에는 중국에서 춘추전국시대가 진행되자 중국 유이민이 대거 조선으로 들어왔다. 이들은 철기문화를 조선에 전해주었고, 자연히 조선에서도 청동기 문화를 밀어내고 철기 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다. 

 

중국에서 여러 제후가 난립하던 전국시대가 막을 내리고 결국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했다. 그러나 연이은 반란으로 진은 멸망하고 유방의 한이 들어섰다. 정국이 혼란한 틈을 타서 연나라 왕이던 노관은 부하를 이끌고 북쪽의 흉노로 망명했고, 연나라 노관의 부하이던 위만은 연나라 동쪽에 있던 조선으로 망명하였다. 연나라는 당시 조선은 준왕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준왕은 위만으로 하여금 변방을 다스리게 하였다. 위만은 변방에서 중국 이민족을 포섭하고 일대에서 세력을 규합하여 기원전 194년 준왕을 밀어내고 조선의 정권을 잡았다. 쫓겨난 준왕은 이후 남쪽 진국으로 가서 한왕이라고 칭했다고 한다. 

 

정권을 차지한 위만은 중국 이민족 세력과 조선 토착세력을 모두 관리로 임명하고 정치적 안정을 꾀했다. 또한 중국에서 들여온 철기문화를 기반으로 군사력을 키웠고, 한반도 남부의 진의 소국들이 한나라와 교역하는 것을 중계무역하면서 많은 이득을 취했다. 조선의 중계무역은 재정적 풍족함을 가져왔고 조선은 이 재정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이웃한 동옥저와 임둔, 진번 등 소국을 정복하여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조선의 발전은 한나라로서는 묵과할 수 없는 사항이었고, 한은 고조선 정벌을 위해 국력을 모은다. 

고구려 정벌을 단행한 한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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