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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사/로마노프 왕조

[러시아사] - 니콜라이 2세 치하 러시아의 외교 (1905 -1914)

by Timemapcatographer 2022.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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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사] - 니콜라이 2세 치하 러시아의 외교 (1905 -1914)


제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다른 유럽열강과 마찬가지로 러시아도 세계대전에 얽혀들어갔다. 차르정부는 1914년 여름 세르비아를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세계대전의 한 축이 되었다. 

1894년 체결된 러불동맹

사실 러일전쟁에 러시아가 패배한 이후 독일과 러시아는 그다지 친밀한 관계가 아니었다. 게다가 러시아와 오스트리아는 사실상 단교에 가까운 상태였다. 그와 동시에 러시아와 프랑스의 관계는 매우 돈독해진 상태였다. 여기에 영국과 러시아의 협상이 성립되었다. 1907년 8월 31일에 조인된 영국과 러시아의 합의는 러시아 외교정책에 있어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양국은 전통적으로 극단으로 치달았던 전력을 갖고있었으나 이 합의를 통해 상호 우호적인 상태를 유지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합의가 도출되는데에는 양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곳에서 합의점을 찾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페르시아 북부에서 상당한 범위의 세력권을 인정받았고, 영국은 남동지역에서 세력권을 획득했다. 그 중간지대는 중립으로 선포했다.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이 자신의 세력권 밖에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고, 영국을 통해서만 아프가니스탄과 외교관계를 맺을 것에 합의했다. 대신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또한 양국은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종주권을 인정하면서 합의를 마쳤다. 

이 새로운 합의는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탈리아의 삼국동맹에 대항하여 러시아, 프랑스, 영국 사이의 삼국협상이 형성되었음을 선포하는 의미가 있다. 프랑스와 영국의 손을 함께 맞잡았다는 것은 러시아 위상의 외교적 격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으며 러시아 내부에서 수많은 지지를 이끌어 냈다. 

 

1차 발칸 전쟁의 세력도

 

삼국동맹과 삼국협상이 대치하고 있을 때, 유럽의 화약고인 발칸반도에서는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세계를 긴장시켰다. 1912-1913년에 발칸반도의 불가리아, 세르비아, 그리스, 몬테네그로가 연합하여 투르크를 공격하여 영토를 확대했다. 발칸반도 대부분은 오스만 투르크의 영역이었으나 이들 전승국이 영토를 확보했고, 그 다음 전승국들이 서로 싸웠다. 거기에 루마니아와 영토를 회복하려는 투르크까지 뒤엉켜 전쟁을 시작했다.  불가리아는 투르크인들에게 패배했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세르비아의 사이는 매우 악화되었다. 

세계대전의 방아쇠가 된 사라예보 사건

1914년 6월 28일 세르비아의 청년에 의해 합스부르크가의 제위 계승자인 페르디난트 대공이 암살당하면서 이러한 긴장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최후통첩을 보냈고, 러시아 정부는 세르비아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세르비아를 지원하지 않으면 러시아는 발칸에서의 영향력을 잃을 수 있었기에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나 서로간의 동맹체제에 따라 독일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지지했고, 프랑스는 러시아의 편을 들었다. 결국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했고, 독일은 러시아에 8월 1일에 전쟁을 선포했다. 뒤이에 3일에는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했다. 또한 독일이 벨기에를 공격하면서 영국은 8월 4일 프랑스와 러시아의 편으로 참전했다. 유럽대륙은 발칸에서 시작된 불로 인해 전쟁의 포화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라예보 현장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의 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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