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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고려사

[고려사] - 삼별초의 대몽항쟁과 제주도 항전

by Timemapcatographer 2023.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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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 삼별초의 대몽항쟁과 제주도 항전

진도에 남은 용장성.

삼별초는 진도에서 여몽연합군을 맞아 용장성에서 패배하였다. 상징으로 내세운 승화후 왕온은 물론 삼별초의 지휘관 배중손도 진도에서 전사하였다. 김통정은 살아남은 병력을 수습하여 제주도로 향하였다. 제주도는 삼별초군이 진도에 들어온 해인 고려 원종 11년인 1270년 11월 개경에서 파견된 관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해 확보한 지역이다. 진도에서 들어온 삼별초군은 김통정의 지휘아래 제주의 방어시설을 구축하면서 잃어버린 제해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고려사 권 27에는 삼별초가 제주에 들어가 내성과 외성을 쌓은 뒤, 그 성을 믿고 더욱 창궐하여 수시로 나와 노략질 한다고 서술해두었다. 삼별초는 진도를 잃고 제주도를 최후 거점 삼아 여몽연합군에 대항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별초군이 제주에 주둔하며 세력을 되찾기 시작하자 남해도에 거점을 구축하고 있던 유존혁도 80여척의 선단으로 제주에 합류하였다. 삼별초 항몽세력은 내륙에서 멀리 떨어진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방어시설을 구축하고 지휘부를 재편하며 점차 세력을 회복하였다. 

제주 항파두리 유적

삼별초가 제주에서 세력을 회복하고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하자, 개경 정부는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삼별초는 1271년 하반기에 여러 연안의 섬에 나아가 영향을 끼쳤으며 이듬해인 1272년 3월부터는 남해안 연안 지역에 공세를 취하게 된다. 이들은 전라도와 경상도 연안지역에 출몰하면서 개경으로 세곡을 운반하는 조운선을 공격했다. 조운선을 나포하고 전함에 불을 지르기도 했고, 상륙하여서 개경에서 파견된 수령을 공격하거나 사살하였다. 

원종 13년인 1272년 5월에는 전라도 일대에서 조운선 13척을, 6월에는 서남해안에서 20척의 조운선과 미곡 3,200석을 빼았았다. 8월에는 미곡 800석을 확보해 자체적 식량 조달과 개경정부의 보급선을 조였다. 경제적 공격외에도 삼별초는 공격도 감행했다. 1272년 하반기에는 몽고군이 주둔한 거제와 마산을 공격하기도 했으며, 특히 거제도에 상륙하여 현령을 체포하기도 했다. 삼별초의 활동은 경기지역인 남양의 영흥도에 달했으며 이는 개경정부에게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 

제주 항파두성 유적

개경정부는 삼별초의 진압을 위해 1273년 김방경을 몽골의 원수 흔도와 함께 출정시켰다. 이들은 진도작전에서 삼별초를 소탕한 인물들로 나주 영산강에 집결해 3군을 정비해 제주로 출정하였다. 당시 병력은 전함 160척에 1만여명에 달했다. 4월초 출정한 이들은 제주에 상륙하여 공격하였다. 김방경의 중군은 제주 동쪽 성덕포에 상륙하였고 함선 30척 규모의 좌군은 비양도에 상륙하여 삼별초의 진지인 제주 항파두리성으로 향했다. 

삼별초의 수장 김통정은 이들에 맞서 싸우다 전황이 불리해지자 70여명의 부하를 이끌고 산으로 피신하였다. 곧 여몽 연합군은 산을 수새가기 시작하였는데, 대부분 발견되어 처단되었으며 김통정 또한 자결하여 시체로 발견되었다. 40년을 이끌어온 고려의 대몽항쟁은 제주에서 삼별초의 항쟁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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