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시대가 끝나고 전국시대가 시작된다. 전국시대가 시작되는 기점은 주로 진나라가 기원전 453년 한, 위, 조의 세나라로 분열되는 것을 기점으로 잡는다. 서주의 왕으로부터 직접 제후로 봉해진 제후국 진이 내부의 하극상으로 분열되었다는 것은 명목상으로라도 남아있던 체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적 의미였기 때문이다.
전국시대는 오로지 강한 국력을 가진 자만이 전쟁통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전국시대 군주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극대화하고 자신의 세력내에서 하극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권력을 군주 중심으로 재편하였다. 또 다른 제후국과의 무한 경쟁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국강병책을 강구하였다. 춘추 전국시대의 군주들은 자신의 근거지에서 나오는 물산을 장악하여 경제적 토대를 갖추고 군주권을 강화하여 사회전반에 대해 대대적인 개혁을 펼쳤다.
전국 7웅이라 불리우는 모든 국가에서 개혁이 있었지만 진(秦)나라에서 가장 성공적인 개혁을 이루어냈다고 평가받는다. 그 개혁은 진나라 효공때 상앙이 진행한 개혁으로 상앙변법으로 불리운다. 이 개혁은 구체제와 질서를 약화시키고 씨족 공동체를 해체하여 이를 다시 국가의 체제로 재편하는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부족집단이 해체되어 오로지 국가에게 충성을 바치는 형태로 재편 된 것이다. 이렇게 재편된 사람들은 국가의 부국강병에 필요한 세금과 병역을 담당해야했기 때문이다.
백성들을 다섯집으로 재편하여 파악하고 지배하였던 십오제가 그 대표적인 정책으로, 국가의 지배력이 말단 백성에게까지 미치게끔 설계된 정책이었다. 또한 국가를 군현으로 나누어 중앙의 관리를 파견하였다. 상앙의 개혁은 국가의 권력을 강하게 하는데 방점이 찍혀있었다.
20년 가까이 진행된 진나라의 개혁으로 진은 지금의 장안부근을 장악하고, 당시 최대 패권국이던 위나라를 제압했다. 또한 서쪽으로 치우친 수도를 함양으로 천도하면서 중원으로 진출할 발판을 마련했을 뿐 아니라, 많은 양인의 수를 바탕으로 재정을 확충하여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국가는 백성이 토지를 경작해 얻은 소득 가운데 생존에 필요한 양만 남긴채 잉여 소득물은 모두 국가가 수취하여 국가재정을 튼실히 하였다. 이러한 지배체제를 시행하여 진에서는 풍족한 국가재정과 소농민 편제를 발달시켰고 이를 바탕으로 전쟁을 착실하게 준비 할 수 있었다. 진은 다른 제후국이 넘볼 수 없는 패권국이 되었고, 그 지위를 계속 유지하였다. 이는 곧 전국통일의 밑거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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