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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4

[중국사] - 송나라의 중국 통일과 새로운 적, 거란 [중국사] - 송나라의 중국 통일과 새로운 적, 거란 예로부터 내륙 아시아 초원지대에는 수많은 유목민족이 거주하였다. 유목민족들은 말, 양, 염소, 낙타등의 가축을 기르며 중국의 북쪽 초원지대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중국은 이러한 유목민들이 세력을 결집하지 못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며 관리하였는데, 중국이 혼란에 휩싸이게되면 유목민이 힘을 모을 기회가 생기곤 했다.10세기 초에 시라무렌 강, 랴호허 강 두개의 강 유역에는 거란이라는 부족이 있었다. 평화롭게  살아가던 거란은 여덟부족이 연맹체를 구성하고 있었으나 9세기 후반 점차 통일의 기운이 일어난다. 당시 당은 황소의 난과 환관의 정치로 내부의 혼란에 신경쓰느라 변경에 위치한 거란까지 신경을 쓰지 못했다. 거란은 이런 상황을 틈타 세력을 규합할 수 있었다.. 2024. 8. 22.
[중국사] - 남송과 금, 혼란의 동아시아와 초원의 끝판왕 몽골 [중국사] - 남송과 금, 혼란의 동아시아와 초원의 끝판왕 몽골  금나라가 북송의 마지막 황제인 흠종을 금나라로 끌고가고 송은 멸망하게 된다. 이를 정강의 변이라고 한다. 그러자 송 흠종의 동생이었던 조구가 남쪽으로 세력을 이끌고 도망쳐 항주에서 황제를 선언하였다. 금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한 강남에서 송을 재흥하였는데 이를 남송이라고 부른다.  북송이었을 당시에는 중국전역을 지배하였지만, 남송은 금에게 화북지방을 내어주고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남중국 일대만을 지배 할 수 있었다. 송 고종은 금의 공격을 피하여 양자강을 건너서 항주로까지 피신했지만, 금나라는 필사적으로 추적하였다. 고종이 추적을 피해 항주로 수도로 결정한 것은 남송 건립 5년만의 일이었다. 1132년 항주를 임안으로 개칭하고 남송의 수도로.. 2024. 8. 13.
[중국사] - 여진족의 금 등장과 송 최대의 치욕, 정강의 변 [중국사] - 여진족의 금 등장과 송 최대의 치욕, 정강의 변 거란과 송이 화북을 두고 대치하던 시기인 11세기 초, 거란의 뒤쪽 만주 일대에서는 새로운 민족이 발흥하여 세력을 키워 나갔다. 이 세력은  말갈이라 불리던 부족인 여진이다. 여진의 발흥은 송나라, 요나라, 고려의 균형을 이루던 동아시아 전역을 다시금 전란으로 몰아간다.  여진은 기본적으로 반 농경 반수렵을 병행하는 민족이다. 이들은 고구려의 후예인 발해 건국되자 발해에 복속되었다. 그러나 요나라에 의해 926년 발해가 멸망하자 다시 거란, 요에 복속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발해시절에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계속 가지고 있었고, 요나라 시기에도 복속되긴 하였으나 여전히 정체성을 지키고 있었다.  여진이 요나라에 귀속한 정도를 가지고 남쪽의 숙여진과.. 2024. 8. 12.
[중앙아시아사] - 여진족과 금나라의 등장과 주르첸 제국 중국의 동북 삼성에 해당하는 만주는 크게 세가지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그중 동북부의 삼림지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북부의 풍부한 삼림은 고조선 시절 이래로 부여, 읍루, 숙신, 말갈 등이 살았고 여기에서 터를 잡고 살던 부족 '여진'은 말갈의 후예였다. 말갈족은 수나라 당나라 초기부터 존재해왔으며 8세기 발해가 건국될때는 발해에 속해 말갈 부족 중 흑수말갈의 세력이 가장 강해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당시 거란이 크게 일어났고, 요나라에 의해 발해가 멸망당하면서 말갈의 일부 세력은 남하하여 말갈이라는 명칭 대신 여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만주에 터를 잡고 살아온 이들은 스스로를 ‘주르첸’이라 불렀고 이것이 곧 한자명 '여진'으로 표기되었다. 이들 여진에서도 여러 부족 가운데 생여진 완안부 .. 2022.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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