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사] - 프리드리히 대왕과 슐레지엔 정복,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
프리드리히 대왕은 28세로 즉위하자 마자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이라는 상황을 맞이한다. 그는 선대들이 전해 내려준 풍족한 재정, 능률적인 관료조직, 훌륭하게 훈련된 군대를 가지고 있었고,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전쟁이 일어나자 국운을 짊어지고 뛰어들었다.
오스트리아는 현재의 벨기에와 이탈리아 일부를 영토로 가지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남자상속을 기반으로 계승을 관리하였는데, 황제 카알 6세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외동딸 마리아 테레지아만이 유일한 계승자였다. 황제는 생전에 딸에게 황제 자리를 계승하게 하려 1713년 국사조칙을 반포하는 등의 노력을했으나, 황제가 죽자 이 조칙을 지킬 국가는 어디에도 없었다.
카를 6세가 죽자 프리드리히는 오스트리아의 슐레지엔 지방을 재빨리 점령하였다. 슐레지엔은 섬유공업이 발달하고 석탄과 철이 풍부하여 주변국이 탐내던 지역이었다. 이러한 프로이센의 행동에 프랑스, 에스파냐, 바이에른 등이 동참하였고 영국은 오스트리아 편에 섰다.
이렇게 벌어진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은 유럽뿐 아니라 인도와 아메리카 등에서도 전투가 벌어지면서 강대국의 패권다툼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확실한 승패는 정해지지 않았고 결국 엑스라샤펠 조약이 체결되면서 마리아 테레지아는 황제의 자리를 계승받게 된다. 프로이센은 슐레지엔 지방을 그대로 영유하게 되면서 프로이센은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알짜배기 땅인 슐레지엔을 잃은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에 복수를 꿈꾸고 있었다. 여기에 프랑스는 프로이센의 급속한 성장에 경계심을 나타냈다. 상황이 이렇자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는 앙숙관계를 청산하고 대프로이센 동맹을 맺었다. 여기에 프로이센을 극도로 싫어하던 러시아의 여제 엘리자베타까지 이 동맹에 참여했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프로이센은 대륙에서 가장 강한 3개의 강대국에 둘러싸인 형국이 되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 당시 적국이었던 영국에 도움을 요청했고, 영국은 프랑스와 러시아를 견제하고 하노버를 지켜줄 대륙세력을 원했기에 이 동맹은 성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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