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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독립운동사11

[독립운동사] - 1930년대- 40년대 무장독립투쟁과 한국광복군의 활동 [독립운동사] - 1930년대- 40년대 무장독립투쟁과 한국광복군의 활동일제가 침략전쟁에 미쳐 중국대륙과 동남아로 침략을 확장하자 만주와 중국 일대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도 일제에 대항하여 독립전쟁을 개시하였다. 독립전쟁 개시에 앞서 독립운동 단체들은 1920년 후반 부터 효율적인 전쟁을 하기위해 독립운동 단체 세력을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1935년 결성된 조선민족혁명당은 당시의 절박한 상황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의열단, 신한독립당, 조선혁명당, 한국독립당 등 다양한 단체가 참가하여 결성되었다. 그러나 내부의 주도권 다툼으로 일부 민족주의 계열이 탈퇴하고 반쪽짜리 통합에 그치고 말았다.1937년 8월 임시정부 주도의 한국 광복운동단체 총연합회가 결성되어 민족주의 세력의 결집을 이끌었고, 11월.. 2023. 3. 11.
[독립운동사] - 독립군의 항쟁과 독립전쟁, 1920년대 무장항일투쟁 [독립운동사] - 독립군의 항쟁과 독립전쟁, 1920년대 무장항일투쟁 1920년대 간도와 만주지방에서는 독립군 단체가 형성되며 일제에 대항하여 독립전쟁을 시작하였다. 국외 지방에는 경술국치를 전후로 많은 독립지사들이 망명하여 독립군기지건설을 추진했는데 간도와 만주도 그 지역들 중 하나였다. 이곳은 국내와 가까운 지리적 이점과 이미 한인들이 많이 건너가 살고 있다는 여건 때문에 비교적 쉽게 독립군 근거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특히 북간도는 강 하나만 건너면 바로 국내로 진입할 수 있는 근거리였기에 이러한 독립군 근거지로서 떠올랐다. 근거지에 한인들의 사회가 구축되고 1919년 3.1운동의 영향으로 1920년대 들어 독립군 무장 단체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다. 대표적인 한인의 근거지로는 용정, 국자가, 봉.. 2023. 3. 8.
[독립운동사] - 1920년대 민족운동: 6.10만세운동과 광주학생운동, 민족유일당 운동과 신간회 [독립운동사] - 1920년대 민족운동: 6.10만세운동과 광주학생운동 1920년대 일제의 문화통치가 진행되면서 국내에서는 민족교육의 열기와 그에 따른 민족적 고양감이 고취되기 시작하였다. 고종이 승하할 때 일어났던 3.1운동과 마찬가지로 1920년대 민족운동의 열기가 뜨겁게 이어지던 때 승하한 순종황제로 인해 다시 만세운동의 열기가 분출되었다. 1926년 4월 26일 순종황제가 서거하자 국내의 청년들이 모여 새로운 만세운동을 조직하고 시위준비를 시작했다. 순종황제의 인산일인 6월 10일 행렬이 다가왔고, 당일 창덕궁에서 종로를 지나 동대문에 이르는 길에 수많은 애도 인파로 가득 찼다. 연희전문, 중앙고보, 경성대학 등의 학생 조직과 천도교에서 동원된 청년들은 인산 행렬이 지나가는 도중에 길목마다 격문을.. 2023. 3. 7.
[독립운동사] - 3·1 운동의 배경과 과정, 결과 [독립운동사] - 3·1 운동의 배경과 과정, 결과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 일어난 거국적, 거족적 독립만세운동이다. 전국에서 계층을 불문하고 전개된 3·1운동은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일대의 사건이었다. 3·1운동을 통해 대한의 정신과 독립에 대한 의지가 살아있음을 만방에 떨쳐보였고, 그 결과 상하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설립될 수 있었다. 나아가 일제에게 기존의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통치 방법을 바꾸게 할 만큼 큰 사건이었다. 1. 3·1운동의 배경 1910년 일제의 대한제국 강제병합 이후 한국의 의병과 열사들은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무단통치를 표방하면서 민족적 탄압을 가했고, 점차 국내에서는 독립운동이 힘들어졌다. 대한의 독립운동 지도자들은 국외에 거점을 마련하고 독립운동.. 2023. 2. 28.
[독립운동사] - 애국계몽단체의 국권수호운동 전개 / 신민회 / 국채보상운동 [독립운동사] - 애국계몽단체의 국권수호운동 전개 / 신민회 / 국채보상운동 1905년 을사조약을 전후하여 대한제국의 개화된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대중을 계몽시켜 실력 양성운동을 펼쳐야 한다는 의식이 확장되었다. 이들은 국가의 힘을 올리려면 대중이 깨어나야한다고 생각했고, 대한제국 곳곳에서는 계몽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졌다. 이들은 교육과 산업을 일으켜 실력을 길러 국권을 회복하는 길이 일제의 간섭을 뿌리칠 수 있는 가장 빠른 독립의 길이라 생각하였다. 계몽운동가들은 1904년 일제가 한국 내 황무지 개척권을 구실로 토지를 약탈하려하자 이들은 이것을 막기 위해 보안회를 조직하였다. 보안회는 이미 일제의 영향력에 들어간 정부가 할 수 없는 일제의 토지약탈에 저항했다. 또한 1905년 조직된 헌정연구회는 이준이 .. 2023. 2. 27.
[독립운동사] -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조선의 의병 항쟁, 을미의병 / 을사의병 / 정미의병 [독립운동사] -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조선의 의병 항쟁, 을미의병 / 을사의병 / 정미의병 일제는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삼기위해 다양한 형태의 침략을 전개해왔다. 경제적 침략, 정치적 침략을 병행하여 대한제국의 숨통을 조여왔다. 여기에 불법적으로 무력을 동원하여 대한제국의 숨통을 조여왔다. 이러한 일제의 침략에 대해 대한제국의 민중은 다양한 형태로 저항하였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한 민중의 저항은 의병활동이었다. 일제의 무력에 대항하는 민중의 움직임은 의병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무력 저항은 1895년 을미년에 처음으로 나타났다. 을미년에 일어난 항일 의병은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다. 을미의병은 양반 유생들을 필두로 국모를 시해한 일본인들을 응징하고, 양반이 가졌던 성리학적 .. 2023. 2. 26.
[독립민수] - 독립군이 사용한 기관총과 수류탄들 HTML 삽입 미리보기할 수 없는 소스 오늘은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할 때 사용한 기관총과 수류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독립군은 일본군에 비해 소수였기에 치고 빠지는 유격전에 특화되어 있었고 타국에서 힘들게 생활하는지라 물자부족과 무기부족에 시달렸습니다.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열정은 있었지만, 강력한 화력의 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무기의 가격도 문제였지만 돈이 있다 하더라도 무기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지요. 강한 화력을 가진 기관총과 수류탄은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독립군은 무기의 수와 질, 화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소수지만 기관총을 구비해 운용했습니다. 그러나 기관총은 운용했지만 어떤 종류의 기관총을 사용했는지 기록에 남은 것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일제 기록에는 몇정의 .. 2023. 2. 16.
[독립민수] - 독립군이 사용한 권총들 [독립민수] - 독립군이 사용한 권총들 독립군은 다양한 종류의 권총을 사용했습니다. 마우저, 콜트, 브로우닝 등 다양한 제조사의 권총이 운용되었는데 이 권총들은 주로 유럽에서 제조되었고, 독립군 장교들이 사용하였습니다. 독립군이 다뤘던 권총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마우저 권총 독일의 총기제작사 마우저에서 생산된 권총입니다. 우리가 살펴볼 모델은 C96 모델입니다. 이 모델은 러시아의 레닌이 홍범도 장군에게 선물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박스형 탄창은 당시 매우 비쌌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조금 특이한 고정형 탄창을 쓰고 있습니다. 권총집을 활용해서 개머리판처럼 사용했기 때문에 매우 특이했습니다. 홍범도 장군의 남은 사진에서 이 권총집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마우저의 M.. 2023. 1. 18.
[독립민수] - 안중근의 삶과 독립운동, 하얼빈 의거와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 주장한 이유. 안중근은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수훈자로, 대한의 독립을 위하여 일생을 바친 독립운동가다. 1. 독립운동 투신 이전 안중근(安重根) 선생은 어릴적부터 골격이 튼튼하고, 사격에 능하여 무골로 불렸다.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은 황해도에 이주하여 거주하였는데, 안중근도 황해도에서 출생하여 활동하였다. 안태훈과 동학농민운동 당시의 일로 친분이 있던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안중근에 대해 총을 잘 쏘는 청년으로 묘사하였다. 당시 김구는 안중근보다 3살이 많았으며, 동학의 접주로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하였고, 안중근은 동학군에 반하는 자경단을 이끌어 박석골 전투 등에서 활약하였다. 일찍이 천주교에 영향으로 진남포에서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등 교육사업에 투신하였으나, 1907년 8월 서울에서 대.. 2022. 12. 21.
[독립민수] - 건국훈장과 독립운동가들 HTML 삽입 미리보기할 수 없는 소스 [독립민수] - 건국훈장과 독립운동가들 훈격 설명 3.1절이나 광복절에 독립유공자들에게 표창을 주는 장면 한번쯤 보셨을 겁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애국장? 애족장?이 무엇인지 알고 계신가요? 오늘은 독립유공자들께서 서훈받는 건국훈장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서훈을 주는 이유 3.1절과 광복절에 시상되는 훈장을 건국훈장이라고 합니다. 사실 건국훈장은 독립운동가만 받는 것은 아닌데요. 건국훈장은 대한민국의 건국에 공로가 뚜렷하거나, 국가의 기초를 공고히 하는 데에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입니다. 등급에 따라 5가지 훈격을 나누고 공로에 따라 1949년부터 시상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장,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으로 나누어지는데 .. 2022. 12. 18.
[독립민수] - 독립군들이 대한의 독립을 위해 사용한 무기:소총 HTML 삽입 미리보기할 수 없는 소스 오늘은 독립군 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독립군들은 대한의 독립을 꿈꾸면서 만주와 간도에서 무기를 들고 젊음을 불태우셨죠. 독립군들은 다양한 종류의 소총을 사용했습니다. 국가와 같은 중앙 군수물자 공급체계가 없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겠죠. 그래서 독립군은 각 단체마다 다른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소총을 입수했고 사용했습니다. 독립군들이 사용한 소총을 알아보겠습니다. 러시아제 모신-나강 소총 독립운동가들이 사용한 소총들 중 상당수의 소총은 모신나강 소총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모신나강은 러시아의 총기제작자 모신과 벨기에 총기제작자 나강의 이름을 딴 소총입니다. 러시아 제국이 1891년 육군 제식 총기로 채택한 볼트액션 소총입니다. 러시아 제국은 1905년 러일전쟁과 세계 .. 2022.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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