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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사/독일사4

[독일사] - 프리드리히 대왕과 슐레지엔 정복,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 [독일사] - 프리드리히 대왕과 슐레지엔 정복,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 프리드리히 대왕은 28세의 어린나이로 즉위하자 마자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이라는 상황을 맞이한다. 그는 선대들이 전해 내려준 풍족한 재정, 능률적인 관료조직, 훌륭하게 훈련된 군대를 가지고 있었고,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전쟁이 일어나자 국운을 짊어지고 뛰어들었다. 오스트리아는 현재의 벨기에와 이탈리아 일부를 영토로 가지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남자상속을 기반으로 계승을 관리하였는데, 황제 카를 6세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외동딸 마리아 테레지아만이 유일한 계승자였다. 황제는 생전에 딸에게 황제 자리를 계승하게 하려 1713년 국사조칙을 반포하는 등의 노력을했으나, 황제가 죽자 이 조칙을 지킬 국가는 어디에도 없었다. 카를 6세가 죽자 프.. 2023. 5. 6.
[독일사] - 프리드리히 대왕과 7년전쟁, 강대국 프로이센의 등장 [독일사] - 프리드리히 대왕과 7년전쟁, 강대국 프로이센의 등장 프로이센이 열강들의 자리를 위협하는 강대국으로 떠오르면서 이를 경계하는 프랑스, 오스트리아, 러시아의 대립으로 7년전쟁이 벌어졌다. 특히 오스트리아는 슐레지엔을 회복하려 했기 때문에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에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쟁탈전이라는 이중적 관계속에 7년전쟁은 시작되었다. 프로이센은 수적으로 열세였다. 3개의 국가로 영토가 둘러싸인 형국이었기에 프리드리히 대왕은 기민하게 병력을 움직였다. 프로이센군은 1757년 프랑스군을 로스바흐에서 격파하고, 이어서 오스트리아 군을 로이텐에서 제압한 다음 기수를 돌려 1758년 초른도르프에서 러시아군에게 승리하였다. 세 국가의 병력이 합쳐지기 전에 각개격파하는 전술을 선택한 것이다.. 2023. 1. 29.
[독일사] - 프리드리히 대왕과 슐레지엔 정복,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 [독일사] - 프리드리히 대왕과 슐레지엔 정복,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 프리드리히 대왕은 28세로 즉위하자 마자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이라는 상황을 맞이한다. 그는 선대들이 전해 내려준 풍족한 재정, 능률적인 관료조직, 훌륭하게 훈련된 군대를 가지고 있었고,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전쟁이 일어나자 국운을 짊어지고 뛰어들었다. 오스트리아는 현재의 벨기에와 이탈리아 일부를 영토로 가지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남자상속을 기반으로 계승을 관리하였는데, 황제 카알 6세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외동딸 마리아 테레지아만이 유일한 계승자였다. 황제는 생전에 딸에게 황제 자리를 계승하게 하려 1713년 국사조칙을 반포하는 등의 노력을했으나, 황제가 죽자 이 조칙을 지킬 국가는 어디에도 없었다. 카를 6세가 죽자 프리드리히는 .. 2023. 1. 29.
[독일사] - 동유럽의 절대왕정과 프로이센의 절대왕정 체제 수립 [독일사] - 동유럽의 절대왕정과 프로이센의 절대왕정 체제 수립 동유럽에서도 서유럽과 마찬가지로 상비군과 관료집단을 위시한 절대왕권이 등장하였다. 전제적 지배라는 기본적 성격에서는 서유럽의 절대왕권과 일치했으나 몇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우선 성립의 시간대가 서유럽에 비해 1세기 이상 늦었다. 또한 성립 계기가 자율적인 왕권강화가 아닌 군사적인 것이나 서유럽의 모델을 따라 한 형태였다. 서유럽과 달리 동유럽은 부르주아가 아닌 농노제가 절대왕정 성립의 기반이었다. 이러한 농노제는 동유럽 절대왕정의 봉사귀족들의 기반이 되었는데, 이는 귀족들과 대척점을 지니는 서유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농노제를 기반으로 했기에 동유럽에서는 도시와 부르주아가 발달하지 않았으며 왕권과 귀족의 유착을 통해 위로부터의 개혁으로.. 2023.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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