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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16

[중국사] - 대륙을 휩쓴 몽골 제국의 완성과 새로운 울르스 [중국사] - 대륙을 휩쓴 몽골 제국의 완성과 새로운 울르스 바투의 원정군은 러시아의 원정 도중 갑작스럽게 철군을 결정한다. 철군 이유는 우구데이 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후임 칸의 회의인 쿠릴타이에 참석하기 위함이었다. 우구데이 칸의 후임은 우구데이의 아들 구유크 칸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구유크 칸이 병사하게 되므로서 후임 칸을 둘러싸고 내부에서 균열이 생겼다. 혼란 끝에 선출된 몽골 제국의 4대 칸은 뭉케였다. 뭉케 칸은 즉위 직후 혼란에 둘러싸인 몽골 내부를 수습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갑작스러운 계승 혼란이 수습되자 몽골은 다시 대외 원정에 나섰다. 뭉케의 지휘 아래 지목된 공격지는 서아시아와 남중국이었다. 원정군 사령관은 자신의 동생인 훌레구와 쿠빌라이를 임명하였다. 1252년 두 방향의 원.. 2024. 8. 16.
[중국사] - 남송과 금, 혼란의 동아시아와 초원의 끝판왕 몽골 [중국사] - 남송과 금, 혼란의 동아시아와 초원의 끝판왕 몽골  금나라가 북송의 마지막 황제인 흠종을 금나라로 끌고가고 송은 멸망하게 된다. 이를 정강의 변이라고 한다. 그러자 송 흠종의 동생이었던 조구가 남쪽으로 세력을 이끌고 도망쳐 항주에서 황제를 선언하였다. 금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한 강남에서 송을 재흥하였는데 이를 남송이라고 부른다.  북송이었을 당시에는 중국전역을 지배하였지만, 남송은 금에게 화북지방을 내어주고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남중국 일대만을 지배 할 수 있었다. 송 고종은 금의 공격을 피하여 양자강을 건너서 항주로까지 피신했지만, 금나라는 필사적으로 추적하였다. 고종이 추적을 피해 항주로 수도로 결정한 것은 남송 건립 5년만의 일이었다. 1132년 항주를 임안으로 개칭하고 남송의 수도로.. 2024. 8. 13.
[고려사] - 고려와 부원세력 권문세족, 일본정벌 [한국사] - 고려와 부원세력 권문세족, 일본정벌 1270년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천도한 고려는 원의 부마국이 되었다. 무신정권을 끝낸 국왕은 스스로 국정을 운영하였다. 원이 직접적으로 고려를 통치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다루가치를 보내어 고려에 간섭하였고, 원은 필요할 때마다 고려왕을 교체할 수 있었다. 또한 고려의 국왕은 어릴 때 원에서 자라야했고, 원 황실의 공주와 결혼해야했다. 이로써 원이 영위하는 국제질서에 고려는 편입되었고, 부마국의 위치에서 그 질서에 순응하였다. 충렬왕에서 공민왕에 이르기까지 총 일곱명의 고려왕이 원간섭기에 즉위하고 폐위되었다. 원 간섭기에 고려 왕실의 호칭과 관제도 모두 원나라식으로 바뀌었다. 고려 국왕의 묘호에는 조종의 예를 올리지 못했고, 첫자는 충성할 충자를 써서 원에 .. 2023. 1. 30.
[고려사] - 몽골의 침략과 강화도에서의 대몽 항쟁 [고려사] - 몽골의 침략과 강화도에서의 대몽 항쟁 몽골이 고려에 접촉한 것은 고려가 강동성에 있는 거란의 병력을 공격하기 위해 공동작전을 펼친 때이다. 1219년 고려는 몽골 병력과 함께 거란의 병력을 공격했고, 이때부터 몽골은 만주에서 거란이 갖고있던 위치를 차지하였다. 동시에 몽골은 고려에 공물을 요구하면서 고려와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권력이 거란에서 몽골로 옮겨과는 과도기에 고려에 공물을 요구하던 몽골의 사신 저고여가 돌아가는 길에 압록강변에서 살해당했다. 압록강변에는 거란의 잔당, 여진족, 고려, 몽골 등 다양한 민족이 산재하는 곳으로 어떤 세력이 저고여를 피살했는지 정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몽골은 이를 고려의 소행으로 단정하고, 1231년 고려를 침략했다. 몽골은 고려를 침략하여 중원정벌 전.. 2023. 1. 25.
[중앙아시아사] - 유목민족사 역사 연표 (*23년 1월) BC 3500, 유목민의 등장과 말 BC 7C, 역사상 첫 유목민: 스키타이 BC 4C, 호(胡)와 흉노의 등장, 만리장성의 축조 BC 129, 흉노 제국과 한 제국의 전쟁 BC 126, 중앙아시아와 한나라, 타림분지의 국가들 BC 52, 흉노와 한의 관계변화, 호한야 선우와 왕소군 AD 48, 흉노의 2차 분열과 일축왕, 남흉노의 등장 AD 89, 북흉노의 서천, 그리고 흉노제국의 멸망 AD 1C, 유목민족 오환의 등장 AD 4C, 한인 왕조의 혼란과 몰락, 유목민족의 중원 이주 AD 4C,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패자, 유연의 등장 AD 6C, 돌궐 제국의 성장과 분열 AD 6C, 당나라와 돌궐제국, 돌궐의 서방정책 AD 657, 돌궐의 멸망과 새로운 돌궐 제국, 돌궐 2제국의 부흥(679 - 744) .. 2023. 1. 5.
[중앙아시아사] - 여진의 흥기와초원의 통일 16세기 후반 여진은 통합되지 않고 건주여진, 해서여진, 야인여진 등 3개의 세력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중 건주여진에서 다시 5부로 나뉘어지고 5부 중 완안부에 속했던 누르하치는 건주여진의 나머지 4부를 모두 통합하고 건주여진의 지배층으로 부상했다. 누르하치가 건주여진을 통일하자 건주여진의 통일에 놀란 해서여진 4부(여허부, 하다부, 울라부, 호이파부)는 몽골에 속한 호르친부와 내할하 5부 등과 연합하여서 1593년 누르하치의 건주여진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이 전투에서 누르하치는 연합 세력을 물리치고 승리하였다. 할하 몽골인들은 1603년 건주여진의 누르하치에게 칸이라는 존호를 바쳤고 1616년 만주에서 여진을 완전히 통합한 누르하치는 청 제국의 전신인 후금을 건국한다. 1626년 누르하치의 뒤를.. 2022. 8. 6.
[중앙아시아사] - 몽골 다얀 칸의 등장과 몽골의 재통일 1453년 타이시에서 칸에 오른 에센은 소위 황금씨족, 즉 징기즈칸의 혈족이 아니었기에 칸에 오른 해 바로 피살된다. 칸을 자칭했던 에센이 살해되자 몽골 초원에는 명목적인 칸은 있으나 여러 부족들로 세력이 나뉘어져 유력 수령들이 서로 대립하는 혼전 양상이 펼쳐졌다. 이런 상황에서 몽골초원에 산재하던 다수의 유목민이 정치적 혼란을 피해 중국과 가깝고 땅이 비옥하여 가축을 먹일 풀이 풍부한 내몽골 오르도스 지방으로 모여들었다. 15세기 후반 부족의 수령 벡 아르슬란은 인근의 다른 수령들을 제압한 뒤 1475년 만두굴을 칸으로 옹립한다. 그리고 자신은 국정을 총괄하는 타이시가 되어 권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만두굴 칸은 허수아비에서 만족하지 않고, 곧 정치적 실권을 장악한뒤 벡 아르슬란을 축출한다. 만두굴 .. 2022. 7. 23.
[중앙아시아사] - 서몽골 오이라트의 등장과 발전 [중앙아시아사] - 서몽골 오이라트의 등장과 발전 명은 중원을 회복한 뒤 막북으로 도망간 북원을 공격했다. 북원이 명나라의 거듭된 원정으로 인해 점차 쇠락의 길을 걷자 서몽골에 위치했던 부족 오이라트는 예수데르를 지원하여 그를 새로운 칸으로 앉힌다. 그러나 제국의 실권과 권력은 오이라트의 부족 수령들이 모두 가진 상태였다. 결국 북원이 붕괴하고 동몽골에서 황금 씨족인 징기즈칸의 일족이 몰락하자 서몽골의 오이라트는 초원을 장악할 기회를 잡았다. 본디 서몽골의 오이라트는 징기즈칸 시대에 몽골에 복속하고 부족의 정략결혼을 통해 제국에 협력한 부족이었다. 그러나 동몽골 황금씨족인 징기즈 일족이 몰락하고 명이 건국되어 나타나 북원에 대한 원정을 거듭하자 이들은 결국 명에 협력했다. 오이라트를 이끄는 세명의 수령.. 2022. 7. 15.
[중앙아시아사] - 몽골제국 이후의 동아시아와 오이라트 [중앙아시아사] - 몽골제국 이후의 동아시아와 오이라트 주원장이 명을 건국하는 1368년에 몽골인들은 대도와 상도를 명군에게 함락당했다. 몽골인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던 중국에서의 영토를 상실하고 초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북원이 건국되었지만 몽골제국은 1487년 다얀 칸이 즉위하여 재통일을 할때까지 120년간 내전 상태로 들어간다. 토곤 테무르 칸은 명군이 응창을 기습할때 가까스로 몸을 피해서 측근만을 이끌고 막북 몽골 초원의 카라코룸으로 대피했다. 토곤 테무르 칸을 북원의 1대 칸으로 보기도 한다. 1370년 사망한 토곤 테무르 칸을 이어 아유시리다라 칸은 전열을 가다듬어 명군의 군사적 공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다. 명나라 홍무제는 1372년 봄 15만 대군을 세 갈래로 나누어서 출병시켰다. 각.. 2022. 7. 11.
[중앙아시아사] - 몽골 제국의 쇠퇴와 종말 [중앙아시아사] - 몽골 제국의 쇠퇴와 종말 세계를 호령했던 몽골제국의 세계지배는 사실상 14세기 중반을 전후하여 붕괴하기 시작했다. 제국 붕괴의 조심은 본격적으로 지배체계가 무너지기 20~30년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각 울루스에서는 칸의 권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차가다이 울루스에서는 1326년 케벡 칸이 사망한 뒤 극히 짧은 기간만을 통치하고 단명한 칸들이 줄을 이었으며 타르마시린 칸은 이슬람으로 개종했다는 이유로 폐위되기도 했다. 내부적인 갈등과 균열로 인해서 차가다이 울루스는 1340년대 후반 동서로 분열되었다. 훌레구 울루스 또한 마지막 군주 아부 사이드의 20년 치세동안 어느정도 안정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이는 권신들의 세력 균형을 위한 일시적인 안정이지 울루스 칸의 권력이 강해서가.. 2022. 7. 7.
[중앙아시아사] - 몽골제국의 칸국들: 훌레구 울루스 (일 칸국) [중앙아시아사] - 몽골제국의 칸국들: 훌레구 울루스 (일 칸국) 우구데이 가문의 칸과의 경쟁을 통해 왕위에 오른 툴루이의 아들 뭉케 칸은 자신의 동생인 훌레구에게 줄 땅을 분봉하기 위하여 중동 원정을 명령한다. 1255년 훌라구는 군사를 이끌고 중동원정을 시작한다. 이 원정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랍 이슬람권의 중심지인 아바스 왕조의 수도 바그다드를 정복하는 것이었다. 훌레구는 1255년 출발하여 중앙아시아의 여러 도시들을 정복하고 2년 뒤인 1257년 11월 훌라구의 군대는 마침내 바그다드에 도착하여 성을 포위했다. 아바스 왕조의 마지막 칼리파 알 무스타심은 몽골군에 의해 살해당했다. 바그다드를 정복한 몽골 군은 도시를 무슬림을 학살하고 도시는 약탈한 후 불태웠다. 이렇게 아바스 왕조는 멸망하였다. 아바.. 2022. 6. 22.
[중앙아시아사] - 몽골의 칸국: 차가타이 울루스 [중앙아시아사] - 몽골의 칸국들: 차가타이 울루스 징기스칸이 1207년 부터 1211년 자제 분봉을 실시해서 차가다이가 받은 최초의 봉지는 알타이 산지 부근이었다. 이 알타이 산지 부근에 받은 초봉지는 이후에 서방원정으로 크게 확장되어 알말릭과 쿠야스 부근에 다다르게 되었고 곧 사마르칸드와 부하라에 이르는 지역까지 모두 포괄하게 되었다. 차가타이는 징기즈 칸의 둘째 아들이고, 차가타이 칸국의 칸을 처음으로 자처한 훌레구는 그의 손자였으며, 차가타이 칸국의 제3대 칸이 되는 예수 몽케는 그의 아들이었다. 차가타이 울루스는 울루스들 사이에서 중앙에 자리잡게 되어 중앙 울루스라고 불리기도 했다. 차가타이 울루스의 이러한 입지조건은 몽골 제국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변동에 계속해서 영향을 받았고 칸의 권력 안정.. 2022.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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