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러시아 혁명4

[러시아사] - 소비에트 러시아의 적백내전 승리 [러시아사] - 소비에트 러시아의 적백내전 승리 1918년 여름에 처음 발발한 러시아의 적백내전은 처음에는 백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6월 말 무렵 사마라 정부의 백군은 심비르스크, 카잔, 우파를 장악했다. 적군은 반격하려했으나 체코의 지원을 받는 콜차크의 백군, 데니킨의 백군과 먼저 싸워야만 했다. 시베리아에서 진격하던 콜차크 부대는 우랄의 페름을 차지하고 볼가 강 목전에 도달했다. 이 무렵 예카테린부르크의 볼세비키는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7월 16일 니콜라스 2세와 황후, 그들의 자식들을 살해한다. 레닌의 비밀명령이라고 추정되는 이 사건으로 백군은 일련의 목표를 잃었다. 하지만 백군은 계속해서 공격해들어왔다. 1919년 봄에 데니킨의 부대는 우크라이나 전역을 점령했고, 모스크바로 진격해왔다. .. 2022. 12. 16.
[러시아사] - 혁명의 나라 러시아, 두개의 혁명과 1917년 - 2월혁명과 로마노프 가문의 통치 종식 [러시아사] - 혁명의 나라 러시아, 두개의 혁명과 1917년 - 2월혁명과 로마노프 가문의 통치 종식 갑작스러운 대중 혁명으로 인해 제국정부는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소멸되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혁명으로 인해 수도인 상트페테부르크(페트로그라드)는 폭동과 시위로 인해서 혼란에 휩싸였다. 수도는 식량 부족사태에 항의하는 노동자들과 늘어가는 파업자수로 인해서 인산인해였고, 파업과 시위현장에서 노동자를 탄압하기 위해 파견된 군병력은 오히려 대중들에게 동조하면서 사태는 심각해졌다. 수도에는 더 이상 예비병력이 없었다. 당시 니콜라이 2세는 전선에 가있었기에 다른 지역에서 군대를 동원하여 수도로 진격시키지 못했고, 결국 수도에서 제국정부의 권위는 쉽게 무너졌다. 많은 제국의 관리들은 몸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1.. 2022. 12. 5.
[러시아사] - 제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라스푸틴과 1917 러시아 혁명 [러시아사] - 제 1차세계대전과 러시아, 라스푸틴과 1917 러시아 혁명 제1차 세계대전은 장기적으로 벌어진 최초의 군사충돌로, 유럽의 사회 경제뿐 아니라 그간 축적된 기술과 기계화 된 군사력, 인력이 맞붙어 충돌한 전례없는 전쟁이었다. 전화의 소용돌이는 유럽대륙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러시아는 물론 어느 국가도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폭력이 그들을 감싸나갔다. 전쟁이 발발한 직후 러시아 내부의 항의는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대중의 적대감은 그들의 적인 외부를 향했다. 그러나 이러한 애국주의적, 민족적 단결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독일에 대한 적개심이 차르정부에대한 충성심으로 환원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이 전에 있었던 국민을 정부의 소모품으로 여기는 차르정부의 태도와 더 이상 이를 좌시하지 않는.. 2022. 12. 1.
[러시아사] - 니콜라이 2세 치하 1905년 러시아 혁명과 러시아 입헌체제 [러시아사] - 니콜라이 2세 치하 1905년 러시아 혁명과 러시아 입헌체제 1905년 러시아에 있었던 혁명은 어쩌면 예견되어 있었던 사건일지도 모른다. 19세기를 마치고 20세기로 넘어가는 세기의 전환기에서부터 1차대전 직전까지 러시아는 위기이자 기회였던 시기이다. 러시아 사회는 입헌군주주의자, 공화주의자, 개혁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이 다양하게 혼재했고, 노동자들은 삶을 지속하기위해 시위와 파업을 진행했다. 러시아 내부는 통일되지 못했고 혼란스러웠으며 대외적으로는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배함에 따라 시국은 어지럽게 돌아갔다. 결국 러시아 정부는 이런 내부의 갈등과 외부의 위협을 보듬지 못하고 1905년 혁명을 맞이한다. 러시아 정부는 내부의 갈등을 억압적인 폭력으로 억누르려했고 이는 결국 혁명의 시발점이 되.. 2022. 11. 29.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