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중앙아시아사40

[중앙아시아사] - 유목민족사 역사 연표 (*23년 1월) BC 3500, 유목민의 등장과 말 BC 7C, 역사상 첫 유목민: 스키타이 BC 4C, 호(胡)와 흉노의 등장, 만리장성의 축조 BC 129, 흉노 제국과 한 제국의 전쟁 BC 126, 중앙아시아와 한나라, 타림분지의 국가들 BC 52, 흉노와 한의 관계변화, 호한야 선우와 왕소군 AD 48, 흉노의 2차 분열과 일축왕, 남흉노의 등장 AD 89, 북흉노의 서천, 그리고 흉노제국의 멸망 AD 1C, 유목민족 오환의 등장 AD 4C, 한인 왕조의 혼란과 몰락, 유목민족의 중원 이주 AD 4C,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패자, 유연의 등장 AD 6C, 돌궐 제국의 성장과 분열 AD 6C, 당나라와 돌궐제국, 돌궐의 서방정책 AD 657, 돌궐의 멸망과 새로운 돌궐 제국, 돌궐 2제국의 부흥(679 - 744) .. 2023. 1. 5.
[중앙아시아사] - 러시아 제국의 남진과 중앙아시아 중앙아시아에 대한 러시아의 공식적인 접촉은 1550년대 말 영국 상인 젠킨스에 의해서 최초로 이루어졌다. 영국은 경제적으로 러시아와 교류를 이어나갔는데 이러한 연유로 영국의 젠킨스는 러시아의 차르 이반 4세의 친서를 가지고 남쪽에 위치한 히바 칸국과 부하라 칸국을 방문하였다. 당시 중앙아시아는 중소 칸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젠킨스의 방문 이후 16세기말 까지 공식적인 사신교환은 물론 러시아와의 교역량도 꾸준하게 증가하였다. 이후 1600년대 들어서도 이들은 각자의 목적에 따라서 교류를 계속 유지하였다. 1700년대 들어서 러시아는 스웨덴과 대북방전쟁을 진행하며 어마어마한 전쟁자금을 충당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다. 그중 러시아표트르 대제에 들어간 소문들 중 하나는 중앙아시아에서 황금이 나온다는 .. 2022. 8. 19.
[중앙아시아사] - 청제국의 중앙아시아 정복과 야쿱 벡의 반란 청 제국은 러시아와 네르친크스 조약으로 동쪽의 우환을 제거했다. 그리고 서쪽으로 눈을 돌려 건륭제 때인 1757년 준가르의 아무르사나를 조혜로 하여금 격파하고 난 뒤 톈산 남북의의 초원과 사막지대를 모두 정복하였다. 그리고 이곳을 새로운 영역이라는 뜻의 신강(新疆)이라고 불렀다. 신강이라는 이름은 청이 새로운 영토를 얻으면 붙이는 일반명사였다. 이곳은 "서역신강"이었다. 청은 기존의 편제와 달리 신강은 성으로 편제하지 않고 군사적인 특별구역으로 설정하였다. 청 제국에서 멀리 떨어진 만큼 민관이 아닌 군관을 배치하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또한 이 구역을 천산을 기준으로 북로, 남로, 동로로 분할하여 통치하였다. 그리고 이곳에 다시 유목민이 정착할 수 없게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둔전과 요새를 건설하였다. 또한.. 2022. 8. 18.
[중앙아시아사] - 청과 러시아의 국경분쟁과 시베리아 진출 몽골 울루스의 킵차크 칸국이자 주치 울루스의 속령에 속해있던 모스크바 공국은 이른바 "타타르의 멍에"로 불리우는 피지배 상황에서 오랜시간 몽골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그러나 몽골이 쇠퇴하고 러시아의 쿨리코보 전투 이후 점차 몽골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러시아는 16세기 중반 볼가강 유역의 킵차크 칸국의 군소정권인 카잔 칸국과 아스트라한 칸국을 공격해 동쪽 방면으로의 진출 교두보를 확보하였다. 1582년 예르막이 코사크인 800명과 우랄 산맥 부근의 시비르 강을 건너면서 러시아의 시베리아 진출이 시작된다. 시베리아라는 지명 역시킵자크 칸국의 후예국인 시비르 강 유역의 시비르 칸국에서 나온 것이다. 러시아는 이때부터 시비르 칸국을 공격하면서 약 70년에 걸쳐서 동쪽으로 진출했다. 1586년 모스크바 공국은 튜멘.. 2022. 8. 16.
[중앙아시아사] - 여진의 흥기와초원의 통일 16세기 후반 여진은 통합되지 않고 건주여진, 해서여진, 야인여진 등 3개의 세력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중 건주여진에서 다시 5부로 나뉘어지고 5부 중 완안부에 속했던 누르하치는 건주여진의 나머지 4부를 모두 통합하고 건주여진의 지배층으로 부상했다. 누르하치가 건주여진을 통일하자 건주여진의 통일에 놀란 해서여진 4부(여허부, 하다부, 울라부, 호이파부)는 몽골에 속한 호르친부와 내할하 5부 등과 연합하여서 1593년 누르하치의 건주여진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이 전투에서 누르하치는 연합 세력을 물리치고 승리하였다. 할하 몽골인들은 1603년 건주여진의 누르하치에게 칸이라는 존호를 바쳤고 1616년 만주에서 여진을 완전히 통합한 누르하치는 청 제국의 전신인 후금을 건국한다. 1626년 누르하치의 뒤를.. 2022. 8. 6.
[중앙아시아사] - 몽골 다얀 칸의 등장과 몽골의 재통일 1453년 타이시에서 칸에 오른 에센은 소위 황금씨족, 즉 징기즈칸의 혈족이 아니었기에 칸에 오른 해 바로 피살된다. 칸을 자칭했던 에센이 살해되자 몽골 초원에는 명목적인 칸은 있으나 여러 부족들로 세력이 나뉘어져 유력 수령들이 서로 대립하는 혼전 양상이 펼쳐졌다. 이런 상황에서 몽골초원에 산재하던 다수의 유목민이 정치적 혼란을 피해 중국과 가깝고 땅이 비옥하여 가축을 먹일 풀이 풍부한 내몽골 오르도스 지방으로 모여들었다. 15세기 후반 부족의 수령 벡 아르슬란은 인근의 다른 수령들을 제압한 뒤 1475년 만두굴을 칸으로 옹립한다. 그리고 자신은 국정을 총괄하는 타이시가 되어 권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만두굴 칸은 허수아비에서 만족하지 않고, 곧 정치적 실권을 장악한뒤 벡 아르슬란을 축출한다. 만두굴 .. 2022. 7. 23.
[중앙아시아사] - 서몽골 오이라트의 등장과 발전 [중앙아시아사] - 서몽골 오이라트의 등장과 발전 명은 중원을 회복한 뒤 막북으로 도망간 북원을 공격했다. 북원이 명나라의 거듭된 원정으로 인해 점차 쇠락의 길을 걷자 서몽골에 위치했던 부족 오이라트는 예수데르를 지원하여 그를 새로운 칸으로 앉힌다. 그러나 제국의 실권과 권력은 오이라트의 부족 수령들이 모두 가진 상태였다. 결국 북원이 붕괴하고 동몽골에서 황금 씨족인 징기즈칸의 일족이 몰락하자 서몽골의 오이라트는 초원을 장악할 기회를 잡았다. 본디 서몽골의 오이라트는 징기즈칸 시대에 몽골에 복속하고 부족의 정략결혼을 통해 제국에 협력한 부족이었다. 그러나 동몽골 황금씨족인 징기즈 일족이 몰락하고 명이 건국되어 나타나 북원에 대한 원정을 거듭하자 이들은 결국 명에 협력했다. 오이라트를 이끄는 세명의 수령.. 2022. 7. 15.
[중앙아시아사] - 몽골제국 이후의 동아시아와 오이라트 [중앙아시아사] - 몽골제국 이후의 동아시아와 오이라트 주원장이 명을 건국하는 1368년에 몽골인들은 대도와 상도를 명군에게 함락당했다. 몽골인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던 중국에서의 영토를 상실하고 초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북원이 건국되었지만 몽골제국은 1487년 다얀 칸이 즉위하여 재통일을 할때까지 120년간 내전 상태로 들어간다. 토곤 테무르 칸은 명군이 응창을 기습할때 가까스로 몸을 피해서 측근만을 이끌고 막북 몽골 초원의 카라코룸으로 대피했다. 토곤 테무르 칸을 북원의 1대 칸으로 보기도 한다. 1370년 사망한 토곤 테무르 칸을 이어 아유시리다라 칸은 전열을 가다듬어 명군의 군사적 공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다. 명나라 홍무제는 1372년 봄 15만 대군을 세 갈래로 나누어서 출병시켰다. 각.. 2022. 7. 11.
[중앙아시아사] - 몽골 제국의 쇠퇴와 종말 [중앙아시아사] - 몽골 제국의 쇠퇴와 종말 세계를 호령했던 몽골제국의 세계지배는 사실상 14세기 중반을 전후하여 붕괴하기 시작했다. 제국 붕괴의 조심은 본격적으로 지배체계가 무너지기 20~30년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각 울루스에서는 칸의 권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차가다이 울루스에서는 1326년 케벡 칸이 사망한 뒤 극히 짧은 기간만을 통치하고 단명한 칸들이 줄을 이었으며 타르마시린 칸은 이슬람으로 개종했다는 이유로 폐위되기도 했다. 내부적인 갈등과 균열로 인해서 차가다이 울루스는 1340년대 후반 동서로 분열되었다. 훌레구 울루스 또한 마지막 군주 아부 사이드의 20년 치세동안 어느정도 안정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이는 권신들의 세력 균형을 위한 일시적인 안정이지 울루스 칸의 권력이 강해서가.. 2022. 7. 7.
[중앙아시아사] - 몽골제국의 칸국들: 훌레구 울루스 (일 칸국) [중앙아시아사] - 몽골제국의 칸국들: 훌레구 울루스 (일 칸국) 우구데이 가문의 칸과의 경쟁을 통해 왕위에 오른 툴루이의 아들 뭉케 칸은 자신의 동생인 훌레구에게 줄 땅을 분봉하기 위하여 중동 원정을 명령한다. 1255년 훌라구는 군사를 이끌고 중동원정을 시작한다. 이 원정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랍 이슬람권의 중심지인 아바스 왕조의 수도 바그다드를 정복하는 것이었다. 훌레구는 1255년 출발하여 중앙아시아의 여러 도시들을 정복하고 2년 뒤인 1257년 11월 훌라구의 군대는 마침내 바그다드에 도착하여 성을 포위했다. 아바스 왕조의 마지막 칼리파 알 무스타심은 몽골군에 의해 살해당했다. 바그다드를 정복한 몽골 군은 도시를 무슬림을 학살하고 도시는 약탈한 후 불태웠다. 이렇게 아바스 왕조는 멸망하였다. 아바.. 2022. 6. 22.
[중앙아시아사] - 몽골울루스의 칸국들: 주치 울루스 (킵차크 칸국) 징기즈칸은 주치를 장자로 규정하였으나 그에게 혈통문제는 계속해서 문제화 되었다. 그가 실제로 징기즈칸의 자식인지에 대한 논쟁은 주치를 일찌감치 칸 울루스의 후계자 선정 문제에서 떼어놓았다. 주치는 우구데이와 혈통 문제로 크게 다투고 모욕을 당한 후 카안 울루스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중앙아시아에 주치 울루스, 킵차크 칸국을 세우고 그곳을 통치한다. 주치의 아들 바투는 1230년대 서방원정을 지휘한다. 서방원정의 결과로 킵차크 초원을 정복하고 러시아를 속령화 하였다. 우랄 산맥을 중앙에 둔 상태로 거대한 영역을 다스리게 된 주치 울루스는 이후에 역사에서 킵차크 한국, 킵차크 칸국으로 불리게 된다. 주치 울루스는 두개로 나누어 좌익과 우익으로 통치되었다. 좌익은 주치의 맏아들 오르다가 첫 칸을 맡았고 우익.. 2022. 6. 21.
[중앙아시아사] - 몽골의 칸국: 차가타이 울루스 [중앙아시아사] - 몽골의 칸국들: 차가타이 울루스 징기스칸이 1207년 부터 1211년 자제 분봉을 실시해서 차가다이가 받은 최초의 봉지는 알타이 산지 부근이었다. 이 알타이 산지 부근에 받은 초봉지는 이후에 서방원정으로 크게 확장되어 알말릭과 쿠야스 부근에 다다르게 되었고 곧 사마르칸드와 부하라에 이르는 지역까지 모두 포괄하게 되었다. 차가타이는 징기즈 칸의 둘째 아들이고, 차가타이 칸국의 칸을 처음으로 자처한 훌레구는 그의 손자였으며, 차가타이 칸국의 제3대 칸이 되는 예수 몽케는 그의 아들이었다. 차가타이 울루스는 울루스들 사이에서 중앙에 자리잡게 되어 중앙 울루스라고 불리기도 했다. 차가타이 울루스의 이러한 입지조건은 몽골 제국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변동에 계속해서 영향을 받았고 칸의 권력 안정.. 2022. 6. 20.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