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 - 중국사 최초의 국가 상나라와 청동기 문명
상나라는 기원전 1600년 경 중국 역사상 최초의 왕조이다. 마지막 수도의 이름을 따서 은나라라고 불리기도 한다.
상나라 이전에 하나라가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아직 전설속의 국가로 다루어지기에 타임맵 중국사에서는 실제 존재했다고 확인되는 상나라부터 시작한다.
상나라가 존재했던 시기는 사실상의 상고시기로 그 존재가 신화적 존재이기에 실존을 의심받곤 했다.
그러나 다행히 여러 증거가 나타나면서 상나라가 존재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할 바가 없다. 19세기 말까지는 전설상의 왕조로 추측했으나 1899년 발견된 갑골문이 발견되며 상나라의 존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920년대 시작된 하남성 안양의 고고학 발굴을 통해 상의 마지막 수도인 은허의 궁전과 왕들의 무덤이 발견되고, 상이라는 글자가 갑골문에서 확인되며 상 왕조는 역사의 존재가 되었다. 또한 당시 사용한 청동기와 장신구등이 출토되며 완벽하게 역사의 시대로 들어왔다.
상은 20대 왕 반경이 은허로 천도할 때까지 도읍을 다섯번이나 옮겼고, 왕위 역시 형제 상속에 의해 이어지곤 했다. 이는 왕권이 확립되지 못하고 지배 집단 내의 여러 부족들이 경쟁하고 다투었기 때문이다.
상나라는 신정정치로 통치되었다. 상의 왕은 모두 점을 쳐서 국사를 진행했고, 갑골문에 따르면 다양한 짐승이 제사에 쓰이기도 했다. 갑골문은 거북이의 뱃가죽 뼈, 또는 소의 어깨뼈에 불로 달군 나무를 누르면 뼈에 균열이 생기는데 그 무늬를 보고 점을 친 것을 말한다. 갑골문의 주요 내용은 조상신과 자연신에 대한 제사, 전쟁, 농사, 재해 등 다양했다. 이러한 제사에는 인신공양도 포함되었는데, 전쟁을 통해 잡아온 포로 역시도 인신 공양의 제물로 쓰이기도 했다.
이때 사용된 제기가 청동기이다. 청동기를 확보하기위해 상은 언제나 대규모 노동력을 조직하고 있어야했다. 이러한 정교한 청동기는 신정적 권위의 상징이기도 했다. 청동과 같은 금속제 유물은 단단하고 잘 소실되지 않아 현대의 역사학자들이 상나라를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상의 농민들은 목제, 석제 농기구를 이용해서 보리와 수수, 기장을 재배했다. 또한 가축을 기른 증거가 확인되었으며, 고대 중국의 가장 주요 기술중 하나인 양잠을 한 것 또한 고고학적 발견에 의해 확인되었다.
당시 동아시아에는 상만 존재하고 있었던것은 아니다. 중원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도 청동기 문명이 성장하고 있었다. 양자강 중류의 신간대양주묘에서는 중원의 청동기와는 다른 양식이 발견되었다. 또 양자강 상류지역에서 확인된 청동기 문명은 훨씬 다른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상나라는 마지막 왕인 주왕의 폭정으로 주나라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멸망한 시점에 대해서는 여러 설들이 있으나 대체로 기원전 1000년 경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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