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 - 징기즈칸의 아시아 제패와 최강 몽골군의 대외 정복 전쟁
13세기 접어들면서 유라시아 대륙은 금나라와 송나라를 넘어, 새로운 세력이 부상하며 전란의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아시아 내륙 오로도스 지역에서 흥기한 몽골 부족은 주변의 부족을 흡수하며 커다란 세력으로 성장했다. 1189년 칸에 추대된 테무진은 몽골 부족을 이끌고 1203년 케레이트를 격파한다. 케레이트 격파 후 이듬해 1204년 나이만을 격파하고 1205년 테무친은 메르키트까지 격파한다. 결국 1206년 몽골 초원을 통일한 테무친은 초원의 유일한 대칸인 징기즈칸으로 즉위한다.
당시에 북중국을 점거하고 몽골 초원지역에까지 세력을 뻗치고 있던 금나라는 초원의 부족들이 힘을 규합하지 못하도록 서로 대립하게 만드는 정책을 펼쳤는데, 테무친은 이러한 금의 영향력을 물리치고 몽골 초원을 힘으로 통합해버렸다. 그리고는 1206년 오논 강 인근에서 쿠릴타이를 개최하고 초원의 대칸 징기즈칸으로 추대되었다. 이것이 세계를 호령한 몽골 제국의 성립이다.
초원지대를 평정한 몽골은 넘치는 군사력으로 주변의 국가를 침략한다. 가장 먼저 남쪽의 서하가 목표였다. 이어서 남쪽의 금나라를 공격하였다. 서하는 곧 굴복하여 1209년부터 조공을 마쳤다. 금나라 역시 수도를 천도하고 쫓기기에 급급했다. 그 다음 몽골은 서쪽의 이슬람 호라이즘을 향했다.
호라이즘은 항복을 권유하는 징기즈칸의 사절단을 살해하였다. 이에 징기즈칸은 격노하여 1218년 대대적인 정복전쟁을 명령해 호라이즘의 수도 사마르칸트를 점령하였다. 이들은 철저하게 사마르칸트를 파괴하고 잔인한 보복을 행했다. 이 전쟁의 승리로 몽골은 북인도와 이란 고원을 영유하는 대제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 호라이즘 원정에서 돌아와 금을 정복하려던 징기즈칸은 1227년 군영에서 병사하게 되었다.
징기즈칸의 3남 우구데이는 징기즈칸의 뒤를 이어 몽골 제국의 2대 칸에 올랐다. 그는 징기즈칸의 유지를 이어받아 1234년 금을 멸망시키고 이듬해 수도를 옮겼다. 이어 고려와 유럽을 공격하기로 결정하였다. 고려공격은 1231년부터 시작되었으나, 고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서 40년이 지난 1270년에 들어서야 고려조정의 항복을 받아낸다. 그러나 이에 반해 유럽에서의 전쟁은 매우 빠르고 성공적으로 진행 되었다.
몽골은 유럽정벌을 위해 징기즈칸의 첫째 아들인 주치의 아들 바투를 사령관으로 삼고, 명장 수베테이를 지휘관으로 하는 대규모 원정군이 조직되었다. 바투의 원정군은 1236년 봄 출정하였다. 이들은 1238년 러시아 모스크바와 블라디미르를 함락했으며, 1240년에는 남러시아의 중심지인 키예프를 점령하고 학살하였다.
1241년에는 몽골군이 신성 로마제국의 영내로 진입하였다. 폴란드와 신성로마제국은 연합하여 이들을 막으려 했으나, 4월 왈슈타트 평원에서 벌어진 레그니차 전투에서 몽골군에게 대패하게 된다. 그러나 승리를 거머쥔 몽골군은 폴란드로 들어온게 아니라 갑작스럽게 몽골로 철군한다. 그 이유는 우구데이 칸의 갑작스러운 사망이었기 때문이다. 본국에서의 후계회의인 쿠릴타이를 위해서 1241년 겨울 몽골은 본국으로 철군한다. 폴란드와 유럽세계에는 구원과도 같은 기적이었다.
'중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사] - 유목민족의 국가 원의 멸망과 주원장의 명 등장 (0) | 2024.08.16 |
---|---|
[중국사] - 대륙을 휩쓴 몽골 제국의 완성과 새로운 울르스 (0) | 2024.08.16 |
[중국사] - 금나라를 물리친 몽골의 중국통일, 마지막 한족 장군 악비와 남송의 최후 (1) | 2024.08.14 |
[중국사] - 남송과 금, 혼란의 동아시아와 초원의 끝판왕 몽골 (0) | 2024.08.13 |
[중국사] - 여진족의 금 등장과 송 최대의 치욕, 정강의 변 (0) | 2024.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