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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고려사

[고려사] -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이 일어난 고려의 내분과 문벌귀족의 등장

by Timemapcatographer 2023.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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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이 일어난 고려의 내분과 문벌귀족의 등장

여진과의 격렬한 전쟁 끝에 고려가 금에 군신관계를 받아들이자 이후 고려 사회는 천천히 안정되어 갔다.  여진은 고려와의 화친을 잘 이행했고, 고려릐 북방은 안정되었다. 그리고 안정 속에서 고려의 최고 지배층인 문벌귀족이 형성되었다. 문벌귀족은 고려 특유의 제도인 과거제와 음서제도를 통해 관직을 독점하고 정치권력을 장악했다. 문벌귀족 중에서도 유력 가문들은 혼인관계를 통해서 기반을 공고히 했으며 폐쇄적 특권층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막대한 권력을 이용해 불법적으로 개인이나 국가의 토지를 자신이 사유화 하였다. 수많은 자유 농민들이 노비로 전락하였으며 땅 또한 이들에게 흡수되었다. 이때 문벌귀족들은 섬을 소유하기도 했으며 섬에서 가축을 풀어두고 방목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활로 잡는 등의 사치를 부리기도 하였다. 

문벌귀족

고려의 문벌귀족은 경원 이씨, 경주 김씨, 파평 윤씨, 철원 최씨, 해주 최씨, 남평 문씨, 강릉 김씨, 평산 박씨 등이 대표적인 문벌 귀족가문이었다. 특히 이자겸이 실력자로 있던 인주 이씨는 문종대부터 인종대까지 80년간 5명의 왕에게 9명의 왕비를 들이는 외척가문이었다. 이들 문벌귀족은 왕실을 등에 업고 외척가문으로 권력을 휘둘렀고, 나아가 왕위계승에도 영향력을 끼쳐 다른 귀족들과 충돌이 잦았다. 왕권의 약화를 불러온 것은 물론이었다.

1122년 인종이 즉위하자 문벌귀족 인주 이씨 가문은 더욱 막강해졌다. 인주 이씨 가문의 실력자인 이자겸은 인종의 아버지 예종에게 자신의 딸을 왕비로 들였고, 인종이 왕위를 계승할 때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게다가 자신의 딸들을 다시 인종에게 비로 들여 왕실 외척 가문의 정점을 이루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이자겸의 사위가 된 셈이었다. 인종도 이자겸을 대우하여 땅과 하사품을 내렸다. 이러한 인주 인씨 가문에 대한 편애와 권력독점은 타 귀족가문과 왕권이 약화되던 인종의 반발을 불러왔다.

 

1126년 고려 인종의 측근 김찬과 안보린, 지록연 등은 이자겸과 척준경을 제거하기위해 병력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들의 봉기는 실패했다. 척준경의 동생과 아들만 이들에게 희생되었고, 목표인 이자겸, 척준경을 죽이는데 실패했다. 공격을 받은 이자겸은 반격에 나서 고려 궁궐을 불태우며 자신을 공격한 반대파를 제거했다. 이자겸은 자신을 공격한 반대파의 배후에 인종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종국에는 인종을 제거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를 눈치챈 인종이 이자겸의 측근 척준경을 회유하였고, 결국 척준경은 인종에게 협력하였다. 내분으로 이자겸의 난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자겸의 난 이후 문벌귀족에서는 경주 김씨가 권력을 잡고 정국을 주도하였다.

묘청과 김부식

묘청의 난은 이자겸의 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 1135년에 일어난 이자겸의 난 이후 고려의 민심은 매우 흉흉했다. 서경 출신의 묘청은 풍수도참설을 기반으로 서경으로 도읍을 옮겨야 한다는 사항을 세간에 퍼트렸다. 묘청을 위시한 이들은 서경 천도를 성사시키고 이를 계기로 권력을 장악하려 했다. 또한 묘청의 세력은 한때 업신여겼던 여진이 북방의 강국으로 떠오르고 사대의 예를 취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금나라를 정벌하자면서 고려의 자주성을 표면에 내세워 민심을 끌었다. 이에 김부식 등 개경출신의 문벌 귀족의 반대가 불거졌다.

서경으로의 천도가 문벌귀족의 반대에 부딪히며 좌절되자, 묘청 세력은 군사력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 하였다. 그리고는 묘청은 자비령을 차단하고 그곳에서 국호를 대위라 하며 국가를 선포했다. 고려 정부는 곧바로 김부식을 총사령관으로 토벌군을 보냈으나 쉽사리 이들을 토벌하지 못했다. 고려군은 1년여 만에 겨우 이들을 토벌할 수 있었다. 이자겸과 묘청의 난 등 고려에서 일어난 봉기들은 모두  소수의 문벌귀족 가문에 권력이 집중되어 나타난 봉기였다. 문벌귀족 집단은 세력화를 통해 왕권의 약화와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시켰고, 고려의 문벌 귀족 중심 사회는 더욱 모순을 더해갔다. 모순이 점철된 사회는 결국 무신정변을 불러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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