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 고려 무신정권의 등장과 각지의 민란
안정된 고려사회에서 문벌귀족의 모순성이 쌓여가자 결국 갈등이 폭발했다. 문벌귀족들은 고려의 모든 관직을 독점하고 권력을 휘둘러왔으나 결국 무신들이 일으킨 정변에 의해 몰락의 길을 걸었다. 무신의 난은 1170년 8월 고려 의종이 보현원에 행차한 틈을 타 무신인 정중부, 이고, 이의방 등 무신들이 쌓여있던 불만을 폭발시키면서 시작되었다. 무신들은 정변을 일으키면서 문신들을 닥치는대로 죽이면서 고려의 권력을 장악하였다. 무신의 난 직후 반란 주도자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 이고와 이의방이 제거되었다.
바로 정중부가 권력을 잡았으나 계속된 내분으로 권력자가 바뀌었다. 정중부 다음에는 경대승, 이의민등이 차례로 권력을 잡았다. 이들은 일관된 정국 운영 능력이나 정치적 성향이 일치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권력 내부에서 갈등도 심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충헌이 이의민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면서 무신정권도 일련의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최충헌을 시작으로 최씨 일가는 60년간 권력을 누렸다.
최씨 일가의 집정은 최충헌의 아들 최우에게 계승되었고 최항, 최의에게 차례로 계승되었다. 그러다 1258년에 최의가 정변으로 살해당하자, 새 권력자로 김준이 등장했다. 김준 또한 임연에게 권력을 뺏기고, 임연의 아들 임유무가 권력을 쥐고 있다가 원의 압력으로 인해 임유무가 숙청되면서 다시 고려에는 왕권이 회복되었다. 동시에 무인정권은 약 100년간의 시대를 끝내고 종말을 고했다.
무신 집권기는 고려에서 전국적으로 민란이 많이 일어난 시기였다. 무신들의 봉기 명분은 부패한 문신에 대한 반란이기는 했지만, 그들 역시 모순된 사회경제적 혁신을 이루지는 못했다. 고려 사회는 여전히 농민을 가혹하게 수탈했고, 농민과 노비들 역시 이들의 무신의 난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봉기했다. 게다가 무신정권은 중앙에서의 권력교체였고 지방에 대한 행정능력을 갖추지 못했기에 지방 곳곳에서 불법행위가 일어났다. 고려의 전통적 신분 질서가 무너지면서 하층민의 봉기가 폭발적으로 일어난 셈이다. 이러한 민란은 무인정권이 안정되지 못했던 초창기에 자주 일어났다. 대표적인 하층민의 봉기로는 망이, 망소이의 항쟁과 경주 김사미의 항쟁등이 있다.
최충헌이 권력을 잡은 이후로도 하층민의 항쟁은 계속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최충헌의 사노비인 만적의 봉기이다. 최충헌 정권의 강경진압으로 민란은 사그러들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하층민은 고려 이전의 국가에서 정통성을 끌어오기도 했다. 1218년에는 현재의 평양이자 고구려의 옛 도읍인 서경에서 고구려 부흥운동이 등장했고, 몽골이 침략하여 혼란스러운 대몽항쟁 기간에도 1237년 담양에서 백제 부흥운동이 다시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몽골의 전면적인 침략으로 인해 민란은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민란은 고려의 체제개혁을 가져오지 못하고 몽골의 침략 아래 묻혀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고려말 사회개혁에 이러한 민란이 개혁의 배경이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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