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 고려와 부원세력 권문세족, 일본정벌
1270년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천도한 고려는 원의 부마국이 되었다. 무신정권을 끝낸 국왕은 스스로 국정을 운영하였다. 원이 직접적으로 고려를 통치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다루가치를 보내어 고려에 간섭하였고, 원은 필요할 때마다 고려왕을 교체할 수 있었다. 또한 고려의 국왕은 어릴 때 원에서 자라야했고, 원 황실의 공주와 결혼해야했다. 이로써 원이 영위하는 국제질서에 고려는 편입되었고, 부마국의 위치에서 그 질서에 순응하였다. 충렬왕에서 공민왕에 이르기까지 총 일곱명의 고려왕이 원간섭기에 즉위하고 폐위되었다.
원 간섭기에 고려 왕실의 호칭과 관제도 모두 원나라식으로 바뀌었다. 고려 국왕의 묘호에는 조종의 예를 올리지 못했고, 첫자는 충성할 충자를 써서 원에 대한 예를 표했다. 다른 호칭들고 모두 급을 낮추어 사용하였다. 특히 3성 6부제를 유지하던 관제도 1부 4사 체제로 축소해 운영하였다.
원 간섭기에 원은 고려에게 공녀와 공출 등 막대한 양의 재화를 요구했는데, 고려는 금, 은, 모시 자기, 인삼, 가죽, 매 등 다양한 물품을 원에 공납해야했다. 게다가 원은 일본정벌을 원하여 1974년 부터는 원과 함께 여몽연합군을 편성하여 2차례의 일본정벌을 떠나기도 했다. 당시 일본은 가마쿠라 막부가 통치하고 있었다. 여몽 연합군은 일본 상륙에는 성공하나 급작스러운 태풍으로 인해 정벌은 실패한다. 1274년의 일본정벌에는 전함 900척과 병력이 1만 4700명이 동원되었는데, 이는 모두 고려정부와 백성의 부담이었다.
원의 위세가 막강하자 이를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이 생겨났다. 이들이 바로 부원세력이다. 이들의 대표적인 가문으로는 몽골어 통역으로 일하면서 권력을 잡은 조인규의 평양 조씨 가문과 매를 키우던 관청인 응방 출신의 윤수의 가문인 칠원 윤씨 가문 등이 있었다. 부원세력과 맞물려 지방에서 득세한 신진관료세력과 일부 무신세력이 득세하여 이들을 당시의 지배계층인 권문세족이라 부른다.
원은 고려의 정치와 경제적 상황에 시시로 개입했으며 그때마다 고려는 계속해서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었으며 고려국왕이 폐위 될 때마다, 정치적 위기가 도래했다. 이로 인해 사회적인 모순이 점점 증폭되어갔고, 부원세력을 포함한 권문세족은 불법적인 토지 약탈을 자행했다. 당시의 농민들은 세금제도의 문란과 국가기강의 해이로 인해 고통받았으며, 조세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국가재정은 궁핍해져 갔다.
원의 군사력이 건재하는 한 고려는 원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고, 원에게서 완전히 독립한 독자적 정책도 추구할 수 없었다.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목왕이 사회모순 해결을 위해 개혁정치를 추구하였지만 이는 엄연히 원의 허락과 간섭아래에서 진행된 것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그렇기에 원말의 사회적 모순은 두터이 쌓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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