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 - 일제의 패망과 광복, 미군정과 혼란의 해방정국
1945년 8월 15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맞은 일본은 일왕의 라디오 방송을 통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였다. 총옥쇄와 본토사수를 외치던 일제는 결국 연합국에 무릎꿇었다.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제로 침탈한지 35년만의 일이었다. 연합국에 항복한 일본은 식민지를 잃게 될 것이었고, 한국인들은 광복을 맞이했다. 해방과 더불어 한인들을 이끌어갈 새로운 정치를 위해 다양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가장 먼저 움직인 인물은 여운형이었다. 여운형은 국내에서 활동하면서 국내에서의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두고 있었고, 이미 1년전부터 일제의 패망을 예측하고 조선건국동맹이라는 비밀조직을 만들어 국내에서 항일 세력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게다가 노동자와 농민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 조직을 건설하고, 서울 뿐 아니라 전국적인 지방조직 결성에도 힘써 군대와 치안대도 편성하고 있었다. 해방과 동시에 여운영은 건국동맹을 기반으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 이른바 건준위로 불렸던 이 단체는 전국 각지에 지부를 두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면서, 생필품을 확보하여 공급하면서 치안과 행정을 담당했다. 조선총독부 수뇌부도 일본으로 물러가기 전에 여운형을 만나 안전을 확보하는 등의 절차를 거친 것으로 볼 때 당시 실질적인 정부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건준위는 곧 정부조직안을 준비하여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하였다. 동시에 각 지역에 있던 지부들도 인민위원회로 바꾸고 통치력을 행사하기시작했다.
그러나 조선인민공화국과 인민위원회는 미군정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미군정은 자신들만이 38선 이남의 유일한 행정부임을 내세우며 어떠한 조직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반해 북한에서는 소련이 직접 인민위원회를 인정하고 간접적으로 북한을 통치하면서 북한의 인민위원회는 통치를 인정받았다.
국내에서 해방을 맞이한 사람들도 기민하게 움직였다. 김성수와 송진우 등 인사는 일제하 지주와 기업가를 중심으로 세력을 모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환국과 미군을 환영하는 대회를 열며 사람을 모았다. 이들은 곧 한국민주당을 창당하였다. 이들은 친일논란에서 자유로울수 없으므로 자신들의 국내기반을 활용하여 활로를 찾으려 하였다. 그리하여 임정을 지지하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임시정부가 미군정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모르고 임정을 지지하였으나, 미군정이 임정을 공식적으로 부인하자 곧 임시정부를 멀리하였다. 이들은 미군정에 협력하면서 이승만과 손을 잡고 반공 노선을 뚜렷이 하였다. 친일논란을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로 덮으려하였다. 나아가 곧 사회문제로 불거진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에 찬성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미군정이 남한에 들어섰지만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자들은 남한 사회에서 조선공산당을 창당하였다. 이들은 노동자와 농민 등 대중을 기반으로 세력을 확대하였다. 이를 통해서 주도권을 장악하고자 했으나 미군정과의 찾은 충돌과 공산당의 불법화로 인해 남한 사회에서 그 세력은 점차 약해져갔다.
해외 독립운동가중 이승만이 1945년 10월에 귀국하였다. 국내에 자신의 지지세력이 없던 이승만은 모든 정파의 단결을 주장하면서 한국민주당과 손을 잡고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하였다. 11월 23일에는 충칭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와 김규식이 귀국하였다. 임시정부의 귀국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으나, 미군정이 임정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김구와 김규식은 개인자격으로만 귀국할 수 밖에 없었다.
해방정국에서는 많은 정당과 사회단체가 난립하면서 이들 사이에 이데올로기 대립이 생겨나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여기에 미군정의 경제정책 실수는 사회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미곡가 정책실패로 인한 식량난과 일부 억압적 정책은 농민과 도시빈민층의 불만을 불러왔다. 이를 해결하고자 좌우합작 운동을 통해 통일 정부를 수립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여운형과 김규식은 여러 정파의 타협을 통해 1946년 10월 좌우합작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으나 좌우익 양측 모두에서 거부당하면서 좌우합작은 수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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