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 - 송나라의 중국 통일과 새로운 적, 거란

예로부터 내륙 아시아 초원지대에는 수많은 유목민족이 거주하였다. 유목민족들은 말, 양, 염소, 낙타등의 가축을 기르며 중국의 북쪽 초원지대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중국은 이러한 유목민들이 세력을 결집하지 못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며 관리하였는데, 중국이 혼란에 휩싸이게되면 유목민이 힘을 모을 기회가 생기곤 했다.
10세기 초에 시라무렌 강, 랴호허 강 두개의 강 유역에는 거란이라는 부족이 있었다. 평화롭게 살아가던 거란은 여덟부족이 연맹체를 구성하고 있었으나 9세기 후반 점차 통일의 기운이 일어난다. 당시 당은 황소의 난과 환관의 정치로 내부의 혼란에 신경쓰느라 변경에 위치한 거란까지 신경을 쓰지 못했다. 거란은 이런 상황을 틈타 세력을 규합할 수 있었다.

그 중심에는 야율아보기가 있었다. 그는 5대 10국의 혼란을 피해 거란으로 망명한 한인들의 협력을 얻어 세력을 구축한 후 거란 부족 전체의 통일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결국 907년 주천충에 의해 당이 멸망함과 동시에 야율아보기는 거란이라는 국가를 건국했다. 칸의 자리에 오른 아율아보기는 916년에는 중국을 모방하여 황제를 칭하였다. 당나라 멸망이후 5대 10국의 혼란동안 만리장성 이북 지역에는 강력한 유목국가가 형성되었다. 거란이 건국되면서 몽골 초원지역에 난립하던 유목세력들은 거란의 세력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건국 이후 야율아보기는 동서로 군사를 이끌고 공격했다. 서남방을 원정하여 탕구트 등의 세력을 제압하고 세력범위를 초원지대가 있는 오르도스 지방까지 확장하였다. 그 다음 후방을 위협하던 발해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야율아보기의 후계자인 태종은 오대의 하나인 후진을 원조하여, 장성 내부의 연운16주를 할양받았다. 이 연운 16주를 통해 유목민이 가지지 못했던 만리장성 이남의 땅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연운 16주는 유목국가가 농경지역을 지배하는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거란은 국호를 요로 바구고, 끊임 없이 세력을 확장하였다. 993년에는 수 차례에 걸친 공격 끝에 고려를 굴복시켰다. 또한 중국이 송나라로 통일된 이후에도 1004년 송을 공격하여 굴복시켰다. 이때 맺은 조약이 전연의 맹약이다. 이는 송나라가 요에 매년 비단 20만필과 은 10만냥을 지급해야한다는 내용을 가진 맹약이었다.

거란은 농경사회를 지배하기 위해서 별도로 중국식 체제를 택해 통치기구를 두었다. 이를 남면관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유목민족에게만 해당되는 제도를 북면관이라 부르며, 이중지배체제를 채택하여 국가를 운영하였다.
우리는 거란에 대해 알아보았지만 아쉽게도 유목민족의 역사는 중국사로 편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역사는 그들의 역사대로 평가되어야 하고, 어느 항목으로 분류한다면 중앙아시아사로 편입할 수 있을것이다. 이들의 역사가 중국사에 나타나는 이유는 오직 이들이 중국을 지배했다는 이유 하나뿐일 것이다. 유목왕조의 중국지배는 간략하게만 소개하고 자세한 것은 타임맵 중앙아시아사를 참고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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