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사] - 몽골제국 이후의 동아시아와 오이라트
주원장이 명을 건국하는 1368년에 몽골인들은 대도와 상도를 명군에게 함락당했다. 몽골인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던 중국에서의 영토를 상실하고 초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북원이 건국되었지만 몽골제국은 1487년 다얀 칸이 즉위하여 재통일을 할때까지 120년간 내전 상태로 들어간다.
토곤 테무르 칸은 명군이 응창을 기습할때 가까스로 몸을 피해서 측근만을 이끌고 막북 몽골 초원의 카라코룸으로 대피했다. 토곤 테무르 칸을 북원의 1대 칸으로 보기도 한다. 1370년 사망한 토곤 테무르 칸을 이어 아유시리다라 칸은 전열을 가다듬어 명군의 군사적 공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다.
명나라 홍무제는 1372년 봄 15만 대군을 세 갈래로 나누어서 출병시켰다. 각기 서달, 이문충 , 풍승 등의 장군이 맡아 고비사막 이북의 북원을 향해서 진군하였다. 그러나 명나라 군대는 톨라 강변에서 쿠케 테무르가 지휘하는 몽골군의 공격을 받아서 수만명이 죽는 참패를 당하게 된다. 여기서 있었던 톨라 강 전투 패배 이후로 홍무제는 몽골에 대해 적극적인 정벌전을 중지하고 소극적인 정책으로 노선을 변경하여 변경의 몽골인들을 회유하는 정책을 폈다.
1378년 아유시리다라가 사망한 뒤에 그의 동생으로 추정되는 투구스 테무르가 칸위를 계승했다. 이듬해인 1388년 20만명의 명군이 동부의 랴호허 강을 강을 건너 나하추를 압박하자 나하추는 20만명의 군세를 가지고 명나라에 투항한다. 이에 투구스 테무르는 동부전선의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서 그곳으로 이동했지만 오히려 명군의 습격을 받아서 패배하였다. 뒤이어 서쪽으로 도주하던 도중 톨라 강변에서 예수데르에게 피살되었다.
투구스 테무르의 죽음으로 쿠빌라이에서 부터 이어진 톨루이 가문의 칸 울루스의 맥은 사실상 끊어졌다. 북원의 멸망이라고 할 수 있다. 칸을 살해한 예수데르가 칸의 자리에 올랐지만 사실상 실권은 그의 주변에 있던 서몽골 수령들에게 있었고 1392년 예수데르가 사망하자 그들은 허수아비 칸을 앉히고 권력을 좌지우지 했다.
북원의 멸망 이후 몽골은 서몽골과 동몽골로 나뉘어 내전을 거듭하였다. 이에 1403년 정난의 변을 일으켜 권력을 잡은 영락제는 북변의 동몽골의 세력이 커지는것을 우려하여 서몽골 오이라트 와 연합을 모생하였다. 오이라트 수령들 3명은 영락제에게 각기 왕호를 받아 군사 동맹을 맺었다. 이에 영락제는 1410년 50만 대군을 이끌고 몽골 친정을 감행하였고 이후 14년, 21년 23년 24년등 4차례에 걸쳐 원정을 진행했다.
거듭된 원정으로 제국의 후예를 자처하던 동몽골은 위축되었고 서몽골 오이라트 세력이 발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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