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3년 타이시에서 칸에 오른 에센은 소위 황금씨족, 즉 징기즈칸의 혈족이 아니었기에 칸에 오른 해 바로 피살된다. 칸을 자칭했던 에센이 살해되자 몽골 초원에는 명목적인 칸은 있으나 여러 부족들로 세력이 나뉘어져 유력 수령들이 서로 대립하는 혼전 양상이 펼쳐졌다. 이런 상황에서 몽골초원에 산재하던 다수의 유목민이 정치적 혼란을 피해 중국과 가깝고 땅이 비옥하여 가축을 먹일 풀이 풍부한 내몽골 오르도스 지방으로 모여들었다.
15세기 후반 부족의 수령 벡 아르슬란은 인근의 다른 수령들을 제압한 뒤 1475년 만두굴을 칸으로 옹립한다. 그리고 자신은 국정을 총괄하는 타이시가 되어 권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만두굴 칸은 허수아비에서 만족하지 않고, 곧 정치적 실권을 장악한뒤 벡 아르슬란을 축출한다. 만두굴 칸은 권력을 장악한뒤 새로운 타이시로 이스마일을 임명한다. 그러나 1479년 만두굴 칸이 갑작스레 피살되고 이스마일에 의해서 새로운 칸이 옹립된다. 이 새로운 칸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이 자가 바로 다얀 칸의 아버지인 바얀 뭉케였다. 바얀 뭉케는 쿠빌라이 칸의 후예였다. 그러나 바얀 뭉케 역시 1487년 피살되고 바투 뭉케의 아들 바투 뭉케가 칸에 즉위하는데 이 인물이 다얀 칸이다.
다얀 이라는 명칭은 칸울루스의 호칭이던 대원(大元)을 음역한 것으로 몽골 제국의 정통성을 표방하고 또 계승하겠다는 정치적인 의식 또한 포함하고 있다. 다얀 칸은 즉위 직후부터 중국의 북변을 약탈하면서 군사적인 압박을 가하였다. 또한 수많은 유목민이 모여 거주하는 오르도스부의 부족들과 연합하여 중국을 공격했고, 1500~1507년에는 명나라 서북변에 대한 전면적인 약탈을 시행하였다.
당시 우익의 만호들이 오르도스부의 수령 이브라힘 타이시의 전횡에 커다란 불만을 품고 좌익의 다얀 칸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에 다얀 칸은 자신의 아들을 친왕으로 삼아 오르도스부로 파견하였는데 곧 반란이 터져 아들이 살해당했다. 이에 다얀 칸은 직접 좌익 3만호를 이끌고 오르도스를 공격하여서 1510년에 승리를 거두었다. 서몽골과 동몽골의 진정한 통일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또한 투메드부의 수령 호오사이를 제압하면서 좌우익에 속하는 몽골인들을 모두 통합하였다. 다얀칸은 몽골을 통일한 뒤 1524년 사망하였다. 다얀 칸은 몽골인들을 6만 호로 재편하여 좌익에 3만호, 우익에 3만호를 배치하였다. 이러한 6만호 체제는 몽골 유목민의 정치적 구성의 뼈대가 되었다.
'중앙아시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앙아시아사] - 청과 러시아의 국경분쟁과 시베리아 진출 (0) | 2022.08.16 |
---|---|
[중앙아시아사] - 여진의 흥기와초원의 통일 (0) | 2022.08.06 |
[중앙아시아사] - 서몽골 오이라트의 등장과 발전 (0) | 2022.07.15 |
[중앙아시아사] - 몽골제국 이후의 동아시아와 오이라트 (0) | 2022.07.11 |
[중앙아시아사] - 몽골 제국의 쇠퇴와 종말 (0) | 2022.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