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사] - 스탈린의 경제정책 - 제 2차, 제 3차 5개년 계획과 역사의 평가
제 1차 5개년 경제계획의 성공이라는 자평에 말미암아 다음 계획들도 진행되었다. 1933년부터 1937년 까지 지속된 제 2차 5개년 계획과 독일의 공격으로 1941년 중단된 제 3차 5개년 계획은 1차때의 목표와 방법을 반복하는 계획이었다. 농업집단화를 이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국가의 인력과 자원을 최대로 동원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소비에트 연방의 국민들은 경제계획이 진행되는 8년동안 전시상황과 같은 삶을 살아야했다. 그 대가로 그들은 2차, 3차 성공이라는 연방정부의 발표를 들을 수 있었다.
제 2차 5개년 계획은 1차 계획보다 전문적으로 계획되어 생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복잡한 공작기계나 정밀기계 제작기술을 포함해 기술숙달에 중점을 둔 계획이었다. 3차 계획은 이러한 기계적 숙달의 반석 위에 군사적인 고려사항이 포함되었다. 이들은 빠른 시일내에 강한 군사력을 건설해야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적군을 무장시키기 위해 제 3차 5개년 계획을 설립하였다.
3차까지의 경제계획을 거치면서 소비에트 연방의 공업, 그중에서도 중공업은 계속해서 성장했다. 연방의 발표에 따르면 연방이 차지하는 생산량은 1937년 당시 전세계의 생산량에 13.7%에 달했다. 전력생산은 15위에서 3위 국가로 뛰어올랐고, 기계와 트랙터 등 트럭제조에 있어서는 미국에 이어 2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나 세계가 경제대공황과 대량 실업사태에 허덕일 때 소비에트 연방은 놀라운 성장을 달성했다.
세차례에 걸친 5개년 계획의 전반적인 평가는 성공이라는 자평으로 귀결된다. 특히 중공업 분야와 농업의 집단화라는 분야에서 계획은 성공을 거두었다. 계획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이던 세계의 시각은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소비에트 연방의 생산량은 크게 증대되었고, 새로운 산업이 태동했으며 소비에트 적군은 차르의 군대 시절보다 발달된 산업을 가질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스탈린의 희망정도로 치부했던 계획은 후진국을 산업화 시키는 효율적인 방법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대가는 끔찍했다. 소비에트 당국은 국민들에게 준전시적인 의무를 부과하고 동원하므로써 목표를 달성했다. 도급노동이 일상화되었고, 임금 격차는 급속히 커졌다. 특히 사회주의적 경쟁으로 불리는 “스타하노프 운동"의 보급은 얼마나 소비에트 연방의 국민들이 당국의 채찍질에 시달렸는지를 보여준다. 도네츠 분지의 석탄광부였던 스타하노프는 자신의 일일채탄 할당량을 1,400% 초과했다고 보고했다. 곧 다른 수많은 산업분야에서 스타하노프식 결과가 성취되었고, 당국은 그들을 포상하면서 이들의 성과를 생산기준량을 올리는데 사용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이익과 관점을 대변하는게 아닌, 당국을 대변하는 국가 기관으로 정책을 위해 사람을 규합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모든 국민이 고통을 받았지만 수용소에 갇힌 수많은 희생자들이 있었다. 1930년대 초에 시작된 수용제도로 인해서 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수백만명의 사람이 수용소에 갇혔다. 이들의 강제 노동은 발트-백해 운하 건설같은 대규모 토목공사와 벌목, 금채굴 산업같은 오지에서 행해지는 중노동에 사용되었다. 강제노동을 감시하고 통제한 정치경찰은 유럽러시아와 시베리아의 최북단, 극동, 그리고 다른 지역들에서 강제수용소 제국을 발전시켰다.
'러시아사 > 소비에트 러시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러시아사] - 소비에트 연방의 스탈린체제와 공포정치, 피의 대숙청 (0) | 2023.01.04 |
---|---|
[러시아사] - 소비에트 연방의 1920년대 외교정책과 치체린 (0) | 2023.01.03 |
[러시아사] - 소비에트 러시아와 스탈린의 시대, 1932년 우크라이나 기근(홀로도모르) 사태 (0) | 2022.12.30 |
[러시아사] - 레닌 사후 소비에트 러시아의 권력투쟁, 스탈린의 등장과 경제 5개년 계획 (0) | 2022.12.27 |
[러시아사] - 적백내전의 승리와 신생 소비에트 러시아의 위기, 크론슈타트 반란과 신경제정책(NEP)의 시작 (0) | 2022.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