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민수] - 독립군이 사용한 권총들
독립군은 다양한 종류의 권총을 사용했습니다. 마우저, 콜트, 브로우닝 등 다양한 제조사의 권총이 운용되었는데 이 권총들은 주로 유럽에서 제조되었고, 독립군 장교들이 사용하였습니다. 독립군이 다뤘던 권총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마우저 권총
독일의 총기제작사 마우저에서 생산된 권총입니다. 우리가 살펴볼 모델은 C96 모델입니다. 이 모델은 러시아의 레닌이 홍범도 장군에게 선물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박스형 탄창은 당시 매우 비쌌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조금 특이한 고정형 탄창을 쓰고 있습니다. 권총집을 활용해서 개머리판처럼 사용했기 때문에 매우 특이했습니다. 홍범도 장군의 남은 사진에서 이 권총집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마우저의 M1910 모델입니다. 영화 암살에서 안옥윤이 사용한 권총도 M1910의 개량형인 M1914모델 입니다.. 실제로 의열단 등 다양한 항일무장단체에서 사용한 모델로 알려져있습니다. 마우저사의 권총은 세계 여기저기에서 카피품이 쏟아져 나온 베스트 셀러였기에 구매와 탄약보급이 수월했다. 특히 중국에서 카피품을 제작했기에 입수와 운용에 더욱 용이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1928년 7월 일제 보고서에서는 정의부에 소속된 병사 중 반수는 마우저 권총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또 참의부와 신민부에서도 마우저를 운용했습니다.
(『한국독립운동사』 4,758-760)
브라우닝 권총(FN M1900)
1895년 존 브라우닝이 설계하고 개발된 FN M1900은 권총은 안중근 의사가 사용한 권총으로 유명합니다. 벨기에에서 생산된 이 총은 73만정이 생산되었고, 전세계에 팔려나갔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연해주에서도 구할 수 있었죠.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는 2정의 브라우닝 M1900 권총으로 일본 제국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고, 대한독립의 당위성을 세계만방에 알렸습니다.
브라우닝 권총은 안중근의사 의거 이후에도 독립군에게 꾸준히 사용되었습니다. 1924년 3월 일제의 정보 보고에 따르면, 대한통의부 5중대 120명은 브로우닝 권총 80정을 운용하고 있었습니다.
(『한국독립운동사』 4,779-780)
나강 권총
모신-나강 소총의 사례와 같이 벨기에의 나강형제가 만든 나강 M1895는 러시아에서 많이 쓰였습니다.러시아 제국은 모신-나강 소총의 라이센스에서 문제가 생기자 라이센스를 대가로 나강 권총을 육군 제식 권총으로 채택합니다.
나강 M1895 권총은 리볼버 권총으로 러시아 제국에서는 툴라 조병창과 유럽 공장에서 50만정 이상 생산할 정도로 많은 생산 수를 자랑했습니다. 나강 권총은 세계 2차대전은 물론 현재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산된 수많은 나강 권총은 러시아가 혼란한 틈에 독립군에게도 흘러들어갔습니다. 만주에서 활동한 독립군들이 장비한 권총에는 이 나강 권총도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록상에는 7연발 소총으로 나타나는데, 이 기록들을 볼 때 독립군들이 나강 권총을 운용한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대한국민회는 7연발 권총을 50정, 대한군정서는 25정, 독군부는 7정 운용했습니다. 또 1921년 활동한 광복단은 3개 지대 모두 합쳐 70여정의 7연발 권총을 운용했습니다.
(*같은 7연발의 탄수를 보이는 소형 남부식 권총의 경우 같은 기록에서 남부식 권총으로 표기)
(*조선인소요사건관계서류 7권, 국외정보 -중국 장백현 내 불령선인단)
루거 권총
특이한 외형과 작동방식을 가진 독일의 권총 루거 P08도 독립군에 의해 운용되었습니다. 독일의 게오르크 루거가 1898년에 설계한 권총입니다. 1908년에 독일육군에 정식으로 채택되면서 대량으로 사용되었고, 1차 대전 당시에 참호전에서 사용되며 유명해진 권총입니다.
루거 P08은 청산리 전투를 준비하던 독립군들의 무장상황에 대량으로 보이는 권총이기도 합니다. 당시 대한국민회는 30정을, 독군부는 6정을 운용했습니다. 대한국민회가 많은 수의 루거 권총을 운용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독립운동사 자료집』 10, 151)
남부 권총(南部)
남부 권총은 일본에서 제작된 권총입니다. 일본인 난부 키지로(南部麒次郎)가 설계에 참여해서 이러한 이름이 붙었습니다. 일본군의 제식권총으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도쿄 포병 공창에서 생산되었고 1904년 러일전쟁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1902년부터 1945년까지 다양한 버전과 27만정에 이르는 많은 수의 남부 권총이 생산되었고, 그 중 일부는 독립군에게 들어갔습니다.
독립군은 일부지만 남부식 권총을 운용했습니다. 러시아 연해주를 통해 입수하거나 노획을 통해 운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1920년 당시 대한군정서는 8정, 대한국민회는 10정, 독군부는 5정을 사용했습니다. 이 권총들은 청산리 전투에 활용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독립운동사 자료집』 10, 151)
오늘은 독립군이 사용한 소총에 이어 권총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독립군들은 중국과 연해주를 통해 구입하거나 노획을 통해 권총을 조달했습니다. 이 무기들은 본격적으로 독립군이 형성되던 1920년대 부터 쓰여져 독립을 달성하는 1945년까지 독립군들의 든든한 무력이 되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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