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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조선사

[조선사] - 조선 건국과 1, 2차 왕자의 난, 태종 이방원의 즉위

by Timemapcatographer 2023.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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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 조선 건국과 1, 2차 왕자의 난, 태종 이방원의 즉위

이성계는 우왕이 지시한 요동 정벌을 수행하기 위해 출정하다 압록강의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려 개경을 향해 진격했다. 이성계가 개경을 점령하고 군권과 정권을 장악한 뒤 권문세족의 경제기반인 토지를 박탈하기 위해 과전법을 실시하였다. 급진적 토지개혁으로 인해서 고려 왕조의 기득권 세력은 경제기반을 잃고 실각했고, 그 과정에서 혁명에 반대하던 정몽주와 온건 개혁파도 숙청되었다.

 

1392년 7월 17일 이성계는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으로부터 왕위를 선양 받았다. 이성계는 즉위 사실을 명에 알리고 제도를 공표했다. 명으로부터 화신과 조선 중 어떤 것을 국호로 할지 물은 뒤 국호를 조선으로 하여 태조 2년에 반포하였다. 3년에는 한양을 새로운 수도로 정하고 대규모 숙청을 통해 개경의 왕족들을 제거하였다.

삼봉 정도전, 1342년 ~ 1398년

조선 건국 초기 국가의 기본제도와 왕권 안정을 위해 노력한 이는 정도전이었다. 그는 신진사대부 답게 불씨잡변 같은 저술을 통해 고려의 국교였던 불교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나아가 불교 대신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을 것을 주장했다. 이렇듯 조선 초기는 정도전과 조준 등 소수의 재상에 의해 국정이 이루어졌다. 정도전은 국왕보다는 재상중심의 정치를 주장했으나, 개국공신들은 이에 불만을 품으며 왕권강화를 주장하였다.


이성계의 첫 부인 신의왕후의 5번째 아들인 이방원은 정도전의 횡포를 막기 위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다. 당시 이성계는 두번째 부인인 신덕왕후의 2남인 방석을 세자로 삼았는데, 이는 이성계의 장성한 아들들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이방원은 방석을 등에 업고 권력을 확대하는 정도전과 그 세력을 숙청하였다. 태조는 자신의 아들들이 서로를 죽이는 것을 보고 2남인 방과에게 자신의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의 자리에 올랐다. 방과는 조선의 2대 정종으로 즉위하였다.

태종, 1367년 6월 13일 ~ 1422년 6월 8일


2대 정종 때에도 4남인 방간이 반란을 일으키는 등 정국이 안정되지 않았고, 이방원은 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방간을 제거하고 1400년 11월 정종으로부터 왕위를 선양받아 조선 3대 태종에 즉위했다. 태종은 국왕 중심의 강력한 관료제도를 마련하고 6조 직계제를 통해 왕권강화를 꾀했다. 나아가 사원의 토지를 몰수하고 국가의 기틀을 닦는 치세를 펼쳤다. 태종의 민생 안정책과 왕권 강화책으로 신생국 조선은 기틀이 잡혔으며 이어지는 세종대에 치세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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