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세동점의 시기인 19세기, 조선은 위기를 맞고 있었다. 조선은 내부적으로는 세도 정치의 폐단으로 조세제도가 흔들리며 삼정의 문란이 일어나고, 무능한 지배세력으로 대표되는 양반에 대항하여 농민의 봉기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때 이미 중국은 아편전쟁에서 패배하고 개항된 상태였으며, 아시아의 무력적 정도를 알게 된 서구 열강 세력이 동쪽으로 눈을 돌려 조선에 접근해오기 시작했다.
이때 집권하기 시작한 흥선대원군은 격변기를 헤쳐나가야 할 정치적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흥선대원군은 조대비와 일부 척족 세력의 지지를 기반으로 고종의 즉위와 함께 수렴청정을 통해서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였다. 정권을 장악한 뒤 고종을 위해 실추된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만의 개혁정치를 실시하였다.
흥선대원군의 개혁정치는 정치에서 제외되었던 종친들과 무신들을 중용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우선 세력기반을 다지는데서 시작하였다. 척족 세력과 타협하기도하고 말단인 서리들의 임명에 관여하면서 세력을 다졌고, 집중된 권력으로 비리를 일삼던 비변사를 해체하였다. 비변사는 세도정치 세력의 온상으로 대원군에게는 척결 1순위였다. 이를 폐지하고 의정부를 되살렸고 육조와 삼군부의 기능을 부활시켰다. 이 과정에서 옛 관료층이 몰락하고 새로운 관료층이 등장하였다. 흥선대원군은 지지세력을 형성하면서 국가 재정의 막대한 결손을 초래하는 서원과 향현사에 대해 조사하고 만동묘를 철폐하였다. 병인양요 이후에는 47개의 사액 서원을 제외하고 600개의 서원을 철폐하였다. 서원은 민중의 고혈을 빠는 것이라 하여 척결하였는데 이는 민중에게 환영받았다.
대원군의 가장 큰 목표는 세도정치 이후 실추된 왕권을 다시 살리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경복궁 중건사업에 국력을 쏟았는데, 모자른 예산을 조달하기위해 원납전과 당백전 등의 동전을 찍어내며 물가의 급격한 상승을 불러일으켰다. 나아가 국고를 충당하기 위해서 여러 세금이 신설되었는데 이는 민중의 수 많은 불만을 불러일으켰다. 이로 인해서 환곡을 폐지하고 사창제, 호포제 등을 실시하며 얻었던 민심을 잃게 되었다. 흥선대원군 집권기에도 민란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대부분 민란의 목적은 체제부정이나 국가 전복가 아닌 단편적인 폐단시정 요구였기에 고을 단위에서 멈추었다. 일부 정감록이나 미륵사상에 기반한 난이 있었으나 대부분 좌절되었다.
또한 대외적으로 이양선이 조선 근해에 출몰하면서 민심이 흉흉해졌다. 이들은 일본과 중국을 왕래하면서 조선에서 물이나 식량을 구하기도 하고, 때로는 조선의 통상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조선 정부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물자는 제공하되, 통상의 요구는 거절하였다. 평양에서는 미국의 제너럴 셔먼호가 통상을 요구하다가 민가를 약탈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거듭된 이양선의 출몰로 조선 내부에서는 위기감이 높아졌다. 흥선대원군은 이 위기를 타개하고 조선의 두만강 변경을 향해 남하하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와 친교를 맺으려 했다. 선교사를 통한 프랑스와의 친교시도는 조선의 봉건적 지배층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거기에 독일인 오페르트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분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는 흥선대원군이 국방력 강화와 통상수교 거부정책의 길로 들어서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조선은 천주교에 대해 대대적으로 박해하였고, 오페르트 도굴사건으로 인하여 이는 더욱 확고해졌다. 1866년 일어난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이에 따른 1871년의 신미양요는 조선의 척화 의지를 더욱 굳게 만들었다. 그러나 세계적인 정세로 볼 때 이는 적절한 판단이 아니었다. 이미 일본은 자신들이 1853년 미국의 페리제독에게 당한 방법을 조선에 사용하기 위해서 준비중이었다. 조선의 개항은 미국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한 일본에 의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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