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사] - 제임스 2세와 명예혁명, 하노버 왕조와 오렌지공 윌리엄
아버지인 찰스 1세가 크롬웰에 의해 처형되고, 그의 아들 찰스 2세는 프랑스로 망명하여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660년 크롬웰 사후 왕정복고를 통해 다시 잉글랜드의 왕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찰스 2세는 많은 국민들이 가지고 있던 청교도식 금욕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거기에 신중한 성격으로 의회와 협의를 통한 정치를 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잘 유지했다. 그러나 그가 후사없이 죽고, 동생인 제임스 2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다시 혁명이 시작된다.
제임스 2세는 유능한 행정가이자 군인이었지만 정치가로서의 재목은 아니었다. 의회와의 협치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거기에 국왕이 카톨릭 신자이다 보니, 잉글랜드에서 카톨릭의 재합법화를 원했다. 의회 역시 이러한 왕의 행태를 알고 있었으나 그의 나이가 많았고, 슬하에 딸만 있는 상황에서 크게 경계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임스 2세가 늦은 나이에 아들을 낳자 의회파는 카톨릭 왕조가 이어지는 것에 대해 반발하고 나왔다. 여기에 영국 육군의 상비군화라는 화제까지 더해져 의회는 더욱 격렬하게 반발하였다.
결국 영국 의회의 두 계파 토리당과 휘그당의 지도자들은 국왕의 맏딸 메리와 그의 남편 윌리엄 3세에게 국왕의 자리를 제안했고, 이들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네덜란드에 거주하던 윌리엄 공은 1688년 11월 약 1만 4천의 병력을 거느리고 영국에 상륙하였다. 혁명에 기운에 밀린 제임스 2세는 결국 프랑스로 망명하였다. 이를 명예혁명이라 한다.
명예혁명은 왕의 교체만이 아닌 의회 중심의 입헌정치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혁명이었다. 유럽 최초의 근대 입헌국가로 거듭난 영국은 절대왕정이라는 괴물을 길들이는데 성공했고, 국민의 의사와 법에 종속시키는데 성공했다.
제임스 2세의 맏딸이던 메리여왕이 사망하고, 둘째 딸인 앤 여왕마저 후사없이 사망하면서 영국에서는 의회를 중심으로하는 내각책임제가 수립되었다. 동시에 앤여왕의 치세 대에 통합법으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정식으로 결합하여 그레이트 브리튼 연합왕국으로 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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