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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

[일본사] - 사무라이, 무사의 등장

by Timemapcatographer 2025.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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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의 등장

 

헤이안 시대에 후지와라씨는 중앙귀족으로 섭관정치를 통해서 150년간 권세를 누렸다.

그러나 후지와라 가문의 천황비가 계속 왕자를 생산하지 못하는 일이 거듭 일어나면서

결국 후지와라와 혈통적으로 관계가 없는 고산죠 천황이 1068년 즉위한다. 

 

고산죠는 섭관정치의 그늘에서 벗어나 천황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기조는 다음 천황인 시라카와 천황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들이 후지와라 가문과 결혼하게 되면

다시 섭관정치가 나타날 것을 우려해 자신은 아들에게 천황 자리를 양위하고 상황이 되어 정치를 펼쳤다.

 

이러한 정치 형태를 원정이라고 한다. 

원정이 후지와라의 세력을 누르고 천황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한 조치였다고는 하지만

천황의 권위로 중앙집권을 회복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상황이 하나의 귀족세력처럼 장원을 확대하고, 귀족을 견제하는 하나의 세력이 되었을 뿐이다.

또한 천황 위의 상황이 한명이 아니라 여러명인 경우도 있었기에 정치적 혼란은 가중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원정정치는 또다른 갈등을 낳았으니, 바로 천황과 상황들 간의 갈등이었다. 

천황, 상황, 귀족, 사원이 다원적 갈등을 빚으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력이 동원되었다.

이때 무사가 등장한다. 

헤이안 시대로 접어들면서 중앙집권체제가 붕괴했고, 지방의 농촌과 도시는 중앙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질서를 유지했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무장을하고, 유력자는 자신의 군대를 키워 난세에 대응했다.

이러한 무사가 상호 연결되면서 주종관계를 형성하고 봉건적 형태로 발전해나갔다. 

이러한 무사의 정점을 동량이라고 부르며 대표적인 인물로는 간무 헤이시와 세이와 겐지가 있었다. 

이들은 섭관정치, 원정 정치 시기 유일한 군사집단이었다. 

이들은 내란과 권력투쟁을 통해 유력 가문의 무력으로서 활동하였으나 

무사는 권력의 핵이 되었으며 12세기 무사들의 활동에 황위 계승이 결정될 정도로 성장하자

점차 스스로 권력을 가진 존재가 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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