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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

[일본사] - 가마쿠라 막부의 성립

by Timemapcatographer 2025.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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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쿠라 막부의 성립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다이라 군을 물리치고 새롭게 권력을 잡았다.

그러나 그들은 다이라 가문의 전철을 밟지 않기위해 어줍잖은 귀족흉내를 내지 않았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무사가문다운 통치체재를 위해 새로운 조직을 거점인 가마쿠라에 설치했다.

1185년 가마쿠라 막부의 시작이다. 가마쿠라는 수도였던 쿄토에서 서쪽으로 500km 떨어진 곳으로 꽤나 거리가 있었다. 

가마쿠라 막부는 자신의 휘하에 모인 무사들과 주종 관계를 맺어서 이들을 고케닌, 즉 가신으로 삼았다.

고케닌은 주군으로부터 영지를 하사받고, 그 대가로 전투에 참여하는 의무를 가졌다.

이러한 토지를 매개로 한 주종관계는 일본 중세 700년을 지탱하는 기본 원리였다. 

겐페이 전쟁의 마지막 전투인 1185년 단노우라 전투에서 다이라 일족을 멸족하면서 

가마쿠라 막부는 통치기구로서 합법석을 얻었다. 

1192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정이대장군 작위를 하사받았다.

 

초기 가마쿠라 막부는 일본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자신들의 가신인 고케닌을 통제하기 위해 슈고와 지토를 임명하였으나, 그 영역은 한정적이여서

다이라 가문에게서 몰수한 토지와 반란을 일으킨 귀족의 토지에만 설치할 수 있었다. 

그 영역은 막부 직할지와 일부 관동지방에 머물 수 밖에 없었고, 여전히 강성한 서쪽 교토 조정의 영향력을 넘지 못했다.

교토 조정 내에서도 막부에 대해서 강력하게 반대하는 세력이 남아있었고, 막부가 설치한 슈고와 지토에 대해서도 반발이 있었다.

첫번째 쇼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직계 자손은 겨우 3대에 끊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리토모의 부인의 호조씨, 섭관가, 천황가에서 명목상의 쇼군을 앉혔다. 

이 과정에서 가마쿠라 막부는 점차 영향력의 범위를 확대하였다. 

특히 고토바 상황이 가마쿠라 막부를 토벌하려했던 조큐의 난, 원나라의 침략 등을 겪으면서 

가마쿠라 막부의 영향력은 전 일본에 미치게 되었다.

 

가마쿠라 막부의 통치체제는 비록 조정의 인가를 받은 공식적인 제도였지만, 

거센 반대에 부딪혔으며 막부와 교토 조정이 이원적으로 지배하는 불완전한 체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정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무사계급의 독자적 정권은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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