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개항
1853년 7월 8일, 미국의 제독 매튜 페리가 이끄는 검은 색 선박들이 일본의 우라가 앞바다에 갑자기 나타나 정박했다. 이 선박들은 증기기관과 바퀴로 항해할 수 있는 범선들이었으며, 일본인들은 이를 '흑선'이라 불렀다. 페리는 일본 측에 미국의 외교적 요구를 전달하고, 상륙을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우라가에는 구경꾼들이 몰려들었고, 일본 측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페리는 에도 만에서 군사적 위협을 시도하며, 일본 측에 3일 내로 고위 관리와의 회담을 요구했다. 당시 도쿠가와 이에요시 쇼군은 병치레로 실질적인 결정을 내릴 수 없었고, 이로 인해 막부는 외교적 대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막부는 결국 페리의 요구를 수용하고, 7월 14일 페리 일행이 구리하마에 상륙하는 것을 허용했다. 그러나 회담에서는 아무런 실질적인 외교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일본 측은 1년 간의 대답 유예를 요청했다. 이에 페리는 1년 후 다시 내항하겠다고 말하며, 일시적으로 철수했다. 페리의 위협적인 행동은 일본 내에서 큰 충격을 주었고, 막부는 그의 요구에 대해 초조함을 느꼈다.
1854년 2월, 페리는 다시 우라가에 내항하여 막부와의 협상 재개를 촉구했다. 3월 4일, 페리의 함대는 9척으로 규모를 확대해 에도 만에 집결했다. 막부는 다시금 당황했지만, 미국 측과의 적대적인 관계를 피하려는 의지를 보였고, 협상은 선상에서 이루어졌다. 약 한 달 간의 협상 끝에 일본은 결국 미국의 개국 요구를 받아들여, 1854년 3월 31일, 가나가와에서 미일화친조약(가나가와 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 조약으로 일본은 미국에게 두 개의 항구를 개방하고, 미국 선박에게 연료 기지를 제공하며, 난파한 미국 선원의 귀환을 보장했다.
미일화친조약의 체결은 일본의 200여 년간 지속된 쇄국 정책의 종식을 의미했다. 일본은 미국과의 공식적인 교역을 시작하면서, 외국과의 교류가 점차 확대되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로써 일본은 근대화의 길을 여는 중요한 변곡점을 맞이하게 되었고, 이후 일본은 서구 열강들과의 외교적 관계에서 중요한 변화와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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