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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청동기-철기시대

[한국사] - 한국의 청동기 시대와 고조선

by Timemapcatographer 2022.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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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1000년 무렵 시작된다. 현재 중국에 있는 요녕성과 길림성 일대의 지역과 한반도 여러 곳에서 청동기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한반도로 유입된 청동기 문화는 남만주를 거쳐서 한반도로 들어왔다. 이때 이 청동기 문화를 향유한 이들이 예족과 맥족, 이른바 예맥족이다. 

좌측이 비파형 동검, 우측이 세형동검

한반도와 만주일대에 거주하던 예맥족의 청동기 문화 중 대표적인 것은 칼날이 비파모양을 닮은 비파형 동검이다. 비파형 동검은 장식이 없고, 기하무늬가 새겨진 청동거울이나 단추등 작은 청동 장식품과 함께 나온다. 그런데 기원전 4세기 무렵부터 칼날 모양이 길고 가느다란 모양으로 변경된다. 이를 세형동검이라 부른다. 이러한 동검의 발굴 위치는 청동기문화를 향유했던 고조선의 위치를 가늠하게 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청동기가 본격적으로 사용되면서 생산도구에서도 발전이 이루어졌다. 도끼와 괭이, 낫, 보습 같은 농기구는 여전히 돌과 나무로 만들어졌지만, 더 정교하게 제작되었다. 이때 사용된 반달돌칼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농기구이다. 청동으로는 농기구로 만들지 않았다. 청동이라는 금속이 희소하기도 했지만 청동이라는 금속 자체가 무르기에 농기구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이때의 농경은 주로 조, 피, 수수등의 잡곡이었다. 이후 지역에 따라 벼농사가 시작되기도 하고, 돼지와 소 등의 가축을 기르기도 하면서 생산을 늘려갔다. 

이처럼 전체 생산량이 늘자 점차 생산량이 권력이 되기 시작하고 평등한 공동체는 빈자와 부자가 구분이 되기 시작했다. 부자는 집단을 이끄는 우두머리가 되고, 재산과 함께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자손에게 물려주는 지배층이 되었다. 청동기 시대 권위자들은 자신들의 무덤으로 권위를 상징했는데 이것이 고인돌이다. 위 사진 처럼 탁자모양을 하고 있는 북방식 고인돌은 청동기 시절 지배자들의 권위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고인돌은 북방식 고인돌과 남방식 고인돌로 나뉘며 한반도 전역에는 수많은 고인돌이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나타난 첫번째 국가는 고조선이다.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를 기반으로 하나의 국가를 형성했는데 현재 한국에서 시조로 삼는 첫번째 국가이기도하다. 청동기 시대의 작은 부락국가들은 서로간의 약탈 전쟁과 침략을 치열하게 전개하였다. 전쟁에서 승리한 부락은 재물과 식량은 물론이고, 패배한 국가의 인력을 동원해 새로운 생산에 투입할 수 있었다. 점차 부락국가 간의 지배와 복속이 진행되며 커다란 정치체제가 나타났고, 결국 하나의 정치체로 합쳐졌는데 그것이 고조선이다. 고조선은 법과 행정체제, 군대를 둔 고대국가로 기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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