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사] - 니콜라이 2세 치하 1905년 러시아 혁명과 러시아 입헌체제
1905년 러시아에 있었던 혁명은 어쩌면 예견되어 있었던 사건일지도 모른다.
19세기를 마치고 20세기로 넘어가는 세기의 전환기에서부터 1차대전 직전까지 러시아는 위기이자 기회였던 시기이다. 러시아 사회는 입헌군주주의자, 공화주의자, 개혁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이 다양하게 혼재했고, 노동자들은 삶을 지속하기위해 시위와 파업을 진행했다. 러시아 내부는 통일되지 못했고 혼란스러웠으며 대외적으로는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배함에 따라 시국은 어지럽게 돌아갔다. 결국 러시아 정부는 이런 내부의 갈등과 외부의 위협을 보듬지 못하고 1905년 혁명을 맞이한다.
러시아 정부는 내부의 갈등을 억압적인 폭력으로 억누르려했고 이는 결국 혁명의 시발점이 되고 말았다. 1905년 1월 22일 경찰은 차르에게 자신들의 청원서를 가지고 겨울궁전을 향해 행진하던 노동자들에게 발포했다. 공식적 추산으로는 130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부상당한 사건이다. 러시아 역사에서는 이를 피의 일요일이라 칭한다.
경찰이 시위대를 향하여 발포하자 러시아 국내에서는 커다란 분노가 표출되었고, 차르에게 충성심을 갖고있던 대다수의 노동자들까지 적대적으로 돌아섰다. 이는 차르 니콜라이 2세에게 더할 수 없는 부담이 되었다. 니콜라이 2세는 정치적 압박을 느껴 의회 개설을 공표하고, 나아가서 화해를 위한 노력으로 종교적 관용과 소수민족 탄압 법률 폐지 등을 시행했다.
그러나 혁명의 물결은 그러한 것에 멈추지않았다. 수많은 농민 소요와 해군의 반란, 학생들의 파업과 시위를 포함하여 10월에는 대대적인 총파업이 시행되었고, 러시아인들은 전제정치를 종식시키려는 결심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이때 사회주의자들은 소비에트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니콜라이 2세와 러시아 제정정부는 국가 전체가 멈춘 것을 깨닫고 결국 항복한다. 황제는 10월 30일에 10월 선언을 발표하여 시민의 자유와 두마(의회)가 선포되었다. 이 선언을 기점으로 로마노프 가문의 러시아제국은 전제국가에서 입헌군주국이되었다.
니콜라이 2세의 10월 선언을 두고 반정부 세력의 두 주축이던 자유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가 분열했다. 자유주의자들은 충분한 것을 얻었다고 생각하며 사회질서 회복을 주장했고, 사회주의자들은 계속해서 대중운동을 계속하여 진정한 민주주의적 변화를 이끌어내려하였다.
그러나 혁명은 지속되지 못했고 급진적 사회주의자들은 러시아 근위대와 경찰에 대항해 싸워야만 했다. 1905년 12월 22일부터 이듬해 1월 1일까지 이들은 유혈투쟁을 계속했고 결국 진압되었다. 러시아는 커다란 진통속에서 1905년의 혁명을 마무리 지으며 개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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