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사] - 혁명의 나라 러시아, 두개의 혁명과 1917년 - 2월혁명과 로마노프 가문의 통치 종식
갑작스러운 대중 혁명으로 인해 제국정부는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소멸되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혁명으로 인해 수도인 상트페테부르크(페트로그라드)는 폭동과 시위로 인해서 혼란에 휩싸였다. 수도는 식량 부족사태에 항의하는 노동자들과 늘어가는 파업자수로 인해서 인산인해였고, 파업과 시위현장에서 노동자를 탄압하기 위해 파견된 군병력은 오히려 대중들에게 동조하면서 사태는 심각해졌다. 수도에는 더 이상 예비병력이 없었다.
당시 니콜라이 2세는 전선에 가있었기에 다른 지역에서 군대를 동원하여 수도로 진격시키지 못했고, 결국 수도에서 제국정부의 권위는 쉽게 무너졌다. 많은 제국의 관리들은 몸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1917년 2월 26일 의회에 해당하는 두마에서 의원들은 제국정부의 해산령을 무시하고 저명 인사 20여명으로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니콜라이 2세는 이러한 상황의 흐름을 인지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굴복했다. 3월 2일 자신의 동생인 미하일에게 제국황제의 자리를 양위하고 자신과 아들 미하일의 퇴위를 발표했다. 그 다음날 미하일은 제헌의회에 권력을 넘겨주고 퇴임했다. 이렇게 로마노프 가문의 러시아 통치는 종식되었고, 러시아 임시정부는 미국 및 다른 국가들로 부터 환영받으며 승인되었다.
러시아 임시정부는 2월 27일부터 10월 25일까지 약 8개월간 존속하였다. 당시 전세계에서 가장 자유주의적인 정부였으며, 러시아의 민주주의와 민족과 계급의 통합을 위해서 급진적 개혁에 착수했다. 언론과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와 파업권이 선포되었고, 사형제 폐지와 정치범들이 석방되었다. 또한 보통, 비밀, 직접, 평등이라는 선거 원칙에 기반하여 선거가 준비도었고 토지 개혁 작업도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임시정부 역시 작업에 착수하기는 하였으나 1917년 러시아를 괴롭혔던 식량부족과 전쟁이라는 고비를 넘지는 못했다. 러시아군은 전선에서 계속해서 참패하고 있었으나 임시정부는 계속 전쟁을 유지하였다. 또한 토지 개혁에서도 확실한 약속 없이 의회에 사안을 넘기므로써 농민의 지지를 얻는데도 실패했다. 더욱이 계속해서 고물가가 지속되었는데 이를 해결하지 못해 도시 노동자의 지지 또한 얻지 못했다. 제정이 해체되고 임시정부가 들어섰지만 러시아 경제는 계속해서 와해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임시정부가 대중의 지지를 잃어가고 있던 사이 사회주의자들로 구성된 세력인 소비에트는 점차 세력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 불만을 품은 대중을 통해 지지기반을 넓혀나갔고, 점차 임시정부의 목을 죄어가기 시작했다. 높아져 가는 대중의 좌절감과 불안감은 러시아 임시정부가 품을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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