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 - 북한의 남침과 6.25 전쟁의 시작 (한국전쟁)
1948년 유엔의 총선거를 거부한 북한은 소련의 괴뢰정권이 들어섰고, 남한은 단독 총선거를 실시하였다. 남한과 북한에 각각의 정부가 설립되어 존재하는 분단의 상황에서 각 정부는 서로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러던 중 1949년 북한의 김일성이 신년사에서 국토완정론을 주장하면서 남북한에는 긴장관계가 형성되었다. 이에 이승만은 김일성의 발언에 북진통일론으로 맞섰다. 서로의 영토를 공격한다는 가정아래 남북의 정부는 각기 미국과 소련의 군사적 지원 아래 군사력을 강화하였다. 특히 미군과 소련이 한반도에서 철수하자 이러한 군비경쟁은 더욱 치열해 졌다. 북한은 중국의 국공내전과 항일무장투쟁을 통해 수많은 실전경험을 쌓은 조선의용군 수만명을 인민군으로 편입시키고, 소련과의 군사협정을 체결하면서 전력이 크게 강화되었다.
긴장상황이 지속되는 1949년에는 남북의 국경선인 38선에서 지속적으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났다. 이러한 군사적 충돌은 대대 또는 연대급 규모의 병력이 동원되기도 했고, 대포를 동원하거나 38선을 넘어 상대방 지역으로 깊숙히 공격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서해안 옹진반도에서는 무력충돌이 자주 있었다. 옹진반도는 위도상으로는 38선 이남에 있었지만 지리적으로 바닷길로 막혀 오히려 북한에서의 접근이 용이한 곳이었다. 또한 남한의 산악지형 곳곳에서 빨치산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본디 파르티잔이라고 불리우는 유격대 빨치산은 남한 곳곳에서 활동했고, 지리산에서는 정규 군대 편제까지 갖춘 빨치산이 활동했다. 북한은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서 해주에 훈련소를 세우고 유격대를 남한에 파견하였다.
빨치산은 주로 밤에 산에서 내려와 관공서와 군부대를 공격하였으며 이들로 인해서 강원도와 전라도, 경상도의 산악지대에서는 낮에는 대한민국이고 밤에는 인민공화국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1949년 남한의 군경이 이들을 대대적으로 토벌하면서 그 세력이 약화되었다. 북한은 적화통일이라는 목표를 향해 새로운 전쟁을 준비한다.
1950년 북한은 본격적으로 준비하여 남한을 공격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대적인 전면공격으로 6.25전쟁, 즉 한국전쟁이 시작되었다. 북한군은 전쟁 초기 승리를 거듭하며 진격하였다. 의정부 전투, 창동 전투, 미아리 전투 등 서울 방어 축선을 무너트리며 3일만에 서울 점령에 성공하였다. 이는 전차의 유무에 따라 전투의 성패가 크게 갈린 것으로, 북한군의 T-34 전차를 막을만한 무기가 국군에게는 없었다. 국군이 가진 기갑장비는 경전차는 커녕 M8그레이하운드 27대뿐이었다. 그레이하운드는 전차보다는 정찰 장갑차에 가까운 무기였다.
북한군은 7월 20일 대전함락, 7월 말에는 낙동강 전선까지 국군을 밀어붙였다. 전쟁이 시작되자 유엔에서는 미군을 주축으로 유엔군을 조직하여 한국전쟁에 참가하였는데, 낙동강 전선이 고착화 되자 유엔군은 부산을 거점으로 반격을 펼치기 시작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전세를 뒤집은 유엔군과 국군은 남한 전지역에서 반격을 개시하여 10월 1일에는 38선을 돌파하고 동부전선에선 10월 말 압록강물을 공수하여 이승만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공군의 전쟁개입으로 인해 전세는 다시 바뀌었다. 전세를 회복한 북한군은 북한 전역을 재수복하고 1951년 1월 4일에는 서울을 재점령한다. 국군과 유엔군은 3월 14일 서울을 다시 찾는다. 전선이 38선 일대에서 밀리고 밀는 양상을 띄면서 세계 여러 나라는 휴전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휴전협상이 2년을 넘게 끌었고, 그 사이 38도선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다. 1953년 7월 유엔군과 중국, 북한군 대표 사이에 휴전협정이 조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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