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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사

[중앙아시아사] - 북흉노의 서천, 그리고 제국의 멸망

by Timemapcatographer 2021.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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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사] - 북흉노의 서천, 그리고 제국의 멸망

 

48년 흉노의 분열로 인해서 남흉노 선우 일축왕 비가 한에 투항였다. 신하를 칭하면서 스스로를 호한야 선우로 칭하자 흉노는 북흉노와 남흉노로 갈라지게 된다. 후한의 영내에서 북흉노와 대립하던 호한야 선우는 고비사막 북쪽에 있는 북흉노 포노선우와 대립하게 되었다.

 

남흉노는 후한의 물질적 지원에 힘입어 북흉노를 정복하고 고비사막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그러나 남흉노와 후한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흉노의 세력이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북흉노는 한과 계속 대립했으며 타림분지의 여러 도시들을 군사적으로 압박하여 각 도시들을 흉노의 세력권 아래에 두었다. 특히 도시 쿠차를 앞세워 야르칸드를 정벌하고 서부의 타림분지 세력권내 15개 도시국가에서 추가병력 3만을 징병하여 호탄을 공격했다. 흉노의 이러한 행보는 서역 북도는 물론, 서역 남도까지 장악하고자 하는 위협적인 군사적 행보였다. 

 

이에 후한은 73년 장군 두고를 서역에 파견하여 북흉노에 군사적 대응을 시작했다. 장군 두고는 73년 북흉노의 호연왕과 일전을 벌여 호연왕을 격파하고 74년에는 투르판 일대를 장악했다. 이어서 87년에는 한의 사주를 받은 선비군대가 동쪽에서 북흉노를 공격하였다. 치명적이었던 이 공격으로 인해 북흉노의 58부, 인구로는 20만명이 남흉노로 투항하였다. 또 89년에는 대장군 두헌이 이끄는 군대가 몽골 초원 항가이 산지 부근의 계락산에서 북흉노의 군대를 대파하였다.

 

이때 북흉노의 제후왕등이 참살되고 다시 21만여명이 후한에 투항하였다. 계속되는 패배에 세력이 위축됨을 느낀 북흉노는 근거지를 버리고 서천하여 세력을 보존하려 했다. 그러나 북흉노의 선우는 다시금 한나라 군대에게 금미산에서 공격을 받게되고 선우의 모친을 포함한 5천여명이 살해당한다. 이로써 북흉노는 근거지 일대에서 지속적인 타격을 받게되었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세력을 옮겨 오손의 땅인 일리강 계곡으로 서천하였다. 이에 몽골초원 동북방에 있던 선비족이 비어버린 북흉노의 옛 땅으로 대거 들어오게되고 그곳에 남아있던 북흉노의 잔여세력인 10만호가 스스로 선비를 칭하게 되었다. 이로써 묵특의 흉노 대통합이후 300년간 지속해오던 흉노 제국은 사라지게 되었다.

서천한 북흉노의 후예 아틸라

 

흉노의 땅은 선비가 차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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