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사] - 위구르 제국의 등장과 당나라, 돌궐의 멸망과 안록산의 난
위구르 제국은 투르크계 유목민인 칙륵의 후예이다.
칙륵 또는 철륵으로 불리는데 이는 수레를 뜻한다. 이들은 바퀴가 높은 수레를 이용하여 유목을 했기 때문에 붙은 명칭이다.
605년 서돌궐의 지배 하에 있던 칙륵이 세력이 커지자 서돌궐의 카간은 칙륵의 수령들을 급습하여 죽여 세력을 억제했다. 그러자 칙륵에 속하던 부구, 통라, 위구르, 바이쿠르등이 모두 스스로를 위구르라고 칭했다. 이들은 셀렝게 강 부근에 살았으며 인구 10만에 병사의 숫자가 5만을 헤아렸다. 이 기록에 따르면 7세기 초에는 톈산 방면에 살던 투르크계 유목민 집단이 서돌궐의 공격으로 동북방 셀렝게 유역으로 이주하면서 위구르를 중심으로 세력화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서돌궐이 제 2제국을 세우면서 카파칸 카간의 치세에 위구르는 여러 부족들과 마찬가지로 서돌궐에 복속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위구르 인들에게도 기회가 왔다. 740년대 들어 돌궐 제 2제국 내부에 혼란이 발생하면서 칙륵 부족들이 돌궐로부터 이반하기 시작했다. 이에 바스밀, 위구르, 카를룩 세 부족이 돌궐에 반기를 들었다. 이들은 742년 바스밀의 수령 외즈미시를 카간을 추대하고 반기를 들려했으나 곧 위구르의 수령인 쿠틀룩 보일라는 바스밀을 공격해 카간을 살해하고 스스로 카간이 되었다. 744년 쿠틀룩 빌게 퀼 카간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들 위구르는 당 조정에 책봉을 요청하여 책봉을받고 오르두 발리크에 수도를 정하고 위구르 제국을 세우게 된다.
위구르제국 건국 후 10년만에 당에서는 안사의 난이 일어나게 되었다. 안록산 휘하에는 돌궐제국의 잔당이 많이 남아있었는데, 위구르는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 당에 구원군 파병을 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756년에는 카라치가 3,000의 기병을 이끌고 당을 구원했고, 이듬해인 757년에는 카를룩 카간의 아들인 야브구가 4,000의 기병을 이끌고 당을 구원했다. 이들은 낙양과 장안을 수복하는데 공을 보탰으며, 이를 통해서 당으로부터 매년 비단 2만필을 포함해 막대한 공물을 얻어낼 수있었다. 이러한 물자는 초원에서 권력이 되어 위구르가 제국을 세우는데 밑바탕이 되었다.
위구르 제국은 약 100년 동안 당과 친목과 동시에 반목하면서 실크로드를 장악하고 그 부를 바탕으로 820년대 최대 전성기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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