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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사

[이집트사] - 이집트 혁명, 새로운 공화국의 불꽃

by Timemapcatographer 2025.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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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혁명, 새로운 공화국의 불꽃

2011년 이집트 혁명(25 1월 혁명)은 30년간 권력을 쥐고 있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이끈 역사적인 사건으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불만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습니다. 이 혁명의 주요 원인은 경찰의 폭력, 부패, 높은 실업률, 식료품 가격 상승, 정치적 자유의 부족 등으로, 특히 무바라크의 아들인 가말 무바라크가 후계자로 거론되면서 이로 인한 권력 세습에 대한 반감도 있었습니다.

 

이 혁명은 2010년 6월, 알렉산드리아에서 발생한 칼레드 사이드의 폭력적인 경찰 살해 사건을 계기로 더욱 확산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온라인 활동가들, 특히 "우리는 모두 칼레드 사이드"라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이슈를 불러일으켰고, 경찰의 폭력에 대한 반발이 커졌습니다. 또한, 아스마 마호우즈라는 26세 여성의 블로그 영상이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되면서 25일 1월 시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2011년 1월 25일, 경찰 폭력에 항의하는 시위가 시작되었고, 시위자들은 부패한 정부와 국가 비상사태법의 폐지,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습니다. 이후 몇 주 동안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을 중심으로 대규모 시위가 펼쳐졌고, 경찰과 군대와의 충돌로 수백 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위는 대부분 비폭력적으로 진행되었고, 경찰서와 정부 청사들이 불타는 등 격렬한 저항이 이어졌습니다.

 

무바라크 정권은 강경한 군사력과 경찰력을 동원했으나, 2월 11일 무바라크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났고, 군부가 임시 통치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혁명 후에도 이집트는 정치적 혼란에 빠졌고, 결국 2012년에는 이슬람주의 성향의 무슬림 형제단이 선거에서 승리하며 모하메드 모르시가 대통령에 취임했지만, 모르시의 통치는 군부와 세속 세력의 반발을 샀고, 2013년에는 다시 군부의 개입으로 모르시가 축출되었습니다.

 

이집트 혁명은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서, 정치적 자유와 정의, 부패 타파를 위한 투쟁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여겨지며, 오늘날까지 이집트 사회와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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