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집트사

[이집트사] - 영국의 이집트 점령 (1882-1952)

by Timemapcatographer 2025. 3. 27.
반응형

영국의 이집트 점령 (1882-1952)

19세기 후반, 이집트는 서구 열강의 경제적 영향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이집트 총독 이스마일 파샤는 대대적인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며 수에즈 운하를 1869년에 완공시켰다. 그러나 건설 비용으로 막대한 부채를 지게 되었고, 1875년 재정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수에즈 운하의 44% 지분을 영국에 매각해야 했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이집트 내에 재정 고문을 파견하여 정부의 실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집트 내에서는 이러한 유럽의 간섭에 대한 반발이 커졌고, 1881년 우라비 파샤를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 운동이 시작되었다. 1882년 4월, 영국과 프랑스는 이집트 총독(케디브) 투피크를 지원하기 위해 알렉산드리아에 군함을 파견했지만, 이는 오히려 민족주의자들의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6월, 민족주의자들은 정권을 장악했고, 이에 대응하여 8월 영국은 수에즈 운하 양쪽 끝에 군대를 상륙시켰다. 9월 텔 엘 케비르 전투에서 영국군은 이집트군을 패배시키고 투피크를 다시 권좌에 복귀시켰다.

이후 영국은 이집트에 사실상의 보호령 체제를 구축했다. 1882년 이집트 헌법이 발표되었으나, 이는 케디브의 자문기구를 규율하는 제한적인 법률이었다. 1882년 이후 이집트 군대는 영국식으로 재편되었고, 영국 장교들이 지휘권을 행사했다.

한편, 수단에서는 1881년 마흐디(무함마드 아흐메드)의 이슬람 반란이 시작되었다. 마흐디군은 수단의 주요 도시들을 장악했으며, 1884년 영국은 고든 장군을 하르툼으로 파견하여 유럽인과 이집트인들의 철수를 준비하게 했다. 그러나 고든은 철수 대신 방어전을 선택했고, 1885년 하르툼이 함락되며 그는 전사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후, 영국은 이집트를 공식적으로 보호령으로 선포하고, 오스만 제국의 간섭을 종식시켰다. 마지막 케디브였던 아바스 2세는 폐위되고, 후세인 카멜이 이집트의 술탄으로 임명되었다.

1919년, 사드 자글룰과 와프드당이 이끄는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영국은 자글룰과 동료들을 몰타로 유배시켰으나, 대중의 강한 반발과 시위로 인해 1922년 2월 22일, 이집트의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영국은 여전히 수에즈 운하 지역에 대한 군사적 통제권을 유지했다.

 

1923년 이집트는 입헌 군주제를 도입하고 헌법을 제정했으며, 사드 자글룰이 총리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영국의 영향력은 계속되었고, 1936년 영국-이집트 조약을 체결하여 영국군의 일부 철수가 이루어졌지만, 수에즈 운하 지역의 군사적 지배는 여전히 유지되었다.

1952년, 자유 장교단이 주도한 혁명이 발생하여 국왕 파루크가 퇴위하고, 그의 아들 푸아드 2세가 즉위했으나 곧 이집트는 공화국을 선포하였다. 이로써 영국의 이집트 지배는 사실상 종결되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