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사] - 적백내전의 승리와 신생 소비에트 러시아의 위기, 크론슈타트 반란과 신경제정책(NEP)의 시작
볼셰비키가 적군으로 적백내전을 승리로 이끌어 전쟁을 종식했을때 소비에트 러시아는 폐허에 가까운 상태였다. 1920년과 1921년의 가뭄과 기근으로 국내외적 경제, 식량상황은 절망적이었다. 10월 혁명 이후 수년동안 전쟁, 처형, 기아, 경제의 붕괴로 인해서 2,000만명에 달하는 국민이 희생되었다. 거기에다 200만에 달하는 인원이 볼셰비키의 통치에 반대해서 러시아를 떠났는데, 여기에는 지식인과 기술자의 비율이 높았다.
볼셰비키가 실시했던 전시 공산주의는 러시아의 경제를 파탄내는데 한몫하기도 했다. 급박했던 정치상황속에서 정권을 연장하는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근시안적 시각에 펼친 제도였기에 결국은 경제 붕괴를 초래했다. 러시아의 경제 대부분은 1921년 당시 제 1차 세계대전 이전의 20퍼센트로 감소했다. 특히 면화는 전쟁 전에 비해 5%, 철강은 2%로 급감했다. 심각했던 가뭄과 기근을 거친 1921년을 보면 경작지는 전쟁전에 비해 62%밖에 온전치 못했고, 수확량은 37%에 불과했다. 환율은 달러대비 600배로 치솟는 등 경제의 붕괴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러시아에서 적백내전이 진행되는 동안 공산주의자들의 권위주의적인 태도와 잔인성에 경악한 농촌에서는 봉기가 촉발되었고, 공장에서는 소요사태와 파업이 일어났다. 이 기간에 농민들은 곡물을 징발하는 공산주의자들을 공격하기도 했다. 서부 시베리아와 볼가강, 우크라이나에서 1920년대 후반부터 대규모 봉기가 일어났다. 이들의 메세지는 명료했다. 곡물 징발금지, 교역회복, 땅에 대한 통제권 회복 등이었다. 노동자들은 파업을 통해서 정치적 불만을 표시했다. 그들은 식량 배급을 늘려줄 것과 피복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
마침내 1921년 3월 공산주의자들이 혁명의 근원지로 여기는 크론시타트 해군기지에서 공산주의 지배에 대한 봉기가 일어났다. 수병들과 다른 봉기자들은 국가통제의 종식을 요구했다. 3월 17일 적군에 의해 반란은 무자비하게 탄압되었지만, 볼셰비키 지배에 대한 불만을 더이상 묵과하고만 있을수 없던 레닌은 1921년 봄에 전시 공산주의를 대신해서 신경제정책, 즉 NEP, Novaia Ekonomicheskaia Politika를 선언하였다. 이는 레닌의 현실주의자적 면모를 보여주며 상당한 이론적 반대를 극복하고 신경제정책이 국가 전체에서 우위를 점하게끔 만들었다.
'러시아사 > 소비에트 러시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러시아사] - 소비에트 러시아와 스탈린의 시대, 1932년 우크라이나 기근(홀로도모르) 사태 (0) | 2022.12.30 |
---|---|
[러시아사] - 레닌 사후 소비에트 러시아의 권력투쟁, 스탈린의 등장과 경제 5개년 계획 (0) | 2022.12.27 |
[러시아사] - 1차 세계대전 이후 민족운동과 소비에트 연방의 성립,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타 지역들 (0) | 2022.12.25 |
[러시아사] - 소비에트 러시아 - 폴란드 전쟁과 리가 조약 (0) | 2022.12.19 |
[러시아사] - 소비에트 러시아의 적백내전 승리 (2) | 2022.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