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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38

[중국사]- 당의 건국과 당 태종 이세민 치세, 여당전쟁의 이야기 [중국사]- 당의 건국과 당 태종 이세민 치세, 여당전쟁의 이야기당의 창업자는 고조 이연이지만 수나라 말기 반란세력을 진압하고, 실질적으로 창업을 주도한 인물은 2대 황제 당 태종 이세민이었다. 이는 훗날 조선의 창업자 이성계의 아들들이 실질적으로 조선의 창업에 앞장선 것과 매우 유사하다. 당 고조 이연의 둘째 아들이었던 이세민은 장안성의 북문인 현무문에서 황태자인 형 건성과 동생 원길을 살해하고, 아버지로부터 사실상 강제적으로 양위를 받았다. 이를 현무문의 변이라고 부른다. 변 사건 이후 2달이 지나 아버지로부터 황위를 이어받아 29세에 황제가 된 23년간의 태종의 정치는 후세에 ‘정관의 치’라 불리며 높게 평가되었다.  이런 정관의 치세를 연 태종의 정치에는 세가지 조처가 있었다. 태종은 오경정의를 .. 2024. 8. 10.
[중국사]- 수나라의 중국통일과 당 고조 이연 [중국사]- 수나라의 중국통일과 당 고조 이연 남북조 시대에 화북에 위치해 있던 북주는 수나라 창시자 양견에 의해 멸망한다. 양견은 북주를 계승하여 수나라를 세웠다. 이가 바로 수 문제이다. 589년에 문제는 자신의 차남 양광을 시켜서 남조 정벌을 진행한다. 이 정벌이 성공하면서 이른바 남북조시대의 마침표를 찍게되는 순간이었다. 수의 남벌로 남조 진이 멸망하고 300년간 지속되어 온 중국 남북조시대는 막을 내렸다.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는 철저한 호구조사를 통해 인구를 착실하게 파악했다. 이를 통해 수 문제 말년에는 창고에 쌓인 곡식이 정부가 50~60년간 사용할 양이 되어 국가의 재정상태가 튼튼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강한 재정을 가진 수나라도 통일 후 관리에 실패하여 불과 38년 만에 멸망했다.  수나라.. 2024. 8. 10.
[중국사]- 위진남북조 시대: 북강남약 [중국사]- 남북조 시대: 북강남약 서진이 유연의 한에 의해  멸망하고, 강남으로 이주한 유민들에 의해 동진이 건립되었다. 동진 건립 이후 남북 관계는 전쟁과 외교전으로 압축된다. 사마씨의 서진이 멸망한 이후 중국은 남북으로 나뉘게 되었다. 한족들이 즐겨 사용하던 중화란 중국과 화하 민족의 합성어인데 중원을 유목민족에게 내주게 된 한족들은 스스로 중화를 칭하기 어려워졌다. 이들은 강남에 동진을 세우고 자신들의 고향인 중원을 회복하고자 북벌을 진행하였지만, 유목민족이 주가 되어 기병이 막강했던 북조의 군사력에 가로막혀 성과는 크지 않았다. 이른바 북강남약의 시대였다. 중국의 고대 사회는 경제적으로는 농업사회였다. 이때는 곧 인구가 경제적 척도였다. 경제적 중심지인 화북을 가진 북조에 비해 한족의 남조는 인.. 2024. 8. 10.
타임맵 중국사 연표 (*24.07.21) * 고대 - 춘추전국시대 [중국사] - 상나라와 주변 청동기 문명들https://teropods.tistory.com/535 [중국사] - 주나라의 등장, 서주와 봉건제https://teropods.tistory.com/536 [중국사] - 춘추: 패자의 시대https://teropods.tistory.com/545 [중국사] - 춘추전국 시대와 각국의 개혁https://teropods.tistory.com/546 [중국사] - 진나라의 전국통일https://teropods.tistory.com/547* 한  [중국사]- 진한제국의 등장과 한무제https://teropods.tistory.com/548 [중국사]- 전한의 멸망과 왕망의 신 (8~23년)https://teropods.tistory.com/.. 2024. 7. 21.
[중국사]- 저무는 영웅의 시대, 5호 16국 시대 (오호십육국 시대) [중국사]- 저무는 영웅의 시대, 5호 16국 시대 (오호십육국 시대) 본디 중국이라고 불리는 중국에서 멀리 떨어진 북방 민족들이 살아가는 초원이 있었다.그러나 여러가지 이유로 북방에서 중원으로 이동한 유목민족 다섯민족을 5호라고한다. 흉노, 선비, 갈, 저, 강 등 다섯 유목민족은 사마씨의 진나라에서 일어난 팔왕의 난이 종결될 즈음 각자 독자 정권을 수립한다.  304년 산서 지방을 근거로 흉노의 유연이 대선우를 칭하며 한나라를 건국한다. 유연은 한고조 유방의 후예를 자처하며 漢(한)을 자처하였지만, 그 후대에 유요가 조로 국명을 고쳤다. 사천에서는 이웅이 성도왕을 자칭하면서 5호16국 시대가 열리게 된다. 유목민족들은 삼국시대로 일컬어지는 후한말기부터 내전으로 힘이 약화된 한족의 영역인 이른바 ‘중원.. 2024. 7. 15.
[중국사]- 후한의 멸망과 영웅의 시대 유방이 건국한 한나라, 전한과 후한이 중국대륙을 지배한 400년은 중국 고대의 완성이자 통일제국이었다. 그러나 통일은 오래가지 못했고 새로운 분열이 나타나게 되었다. 후한의 멸망 이후 이어지는 위, 촉, 오의 3국의 시기는 분열의 경향을 강하게 보여준 시기였다. 이때에는  지방을 중심으로호족이 성장하였다. 지방세력인 호족이 성장하여 중원의 모든 지방에서 영향력을 끼쳤다. 그리고 이러한 중원의 문화는 호족을 통해 주변 이민족에게 까지 미쳤다. 그리고 이러한 이민족을 국가 내에 포용한 한은 한족뿐 아니라 타민족까지 포함하는 제국이 되었지만, 이로인해 구조적으로 국가의 분열이 쉬운 형태로 운영되었다.  한나라때에는 유교를 국교화 하였다. 따라서 황제의 권력이 강화되었고, 지방에서는 사대부층이 성립되었다. 이 .. 2024. 7. 14.
[중국사]- 전한의 멸망과 찬탈자 왕망, 후한의 등장 [중국사]- 전한의 멸망과 찬탈자 왕망, 후한의 등장 한 나라는 무제 이후 한나라는 천천히 쇠락하기 시작했다. 여러 황제를 거치면서 득세한 외척들은 결국 권력투쟁에 뛰어들어  나라를 좀먹기 시작했다. 전한 성제가 즉위한 후 황태후의 일족은 조정에서 중요 직책을 차지하였다. 전한의 혼란을 수습한 왕망도 이러한 외척 왕씨의 일원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입관하였다. 왕망은 순조롭게 승진하여 평제를 옹립하고 자신의 딸을 황후로 들이면서 본격적 실권장악에 착수 하였다.  곧 왕망은 쿠데타를 일으켜 평제를 살해하고 스스로 가황제를 칭하였다. 동시에 참위설과 천재지변을 교묘히 이용하여 한을 대신할 사람이 왕망이라는 여론을 조성하고 수차례 추대를 사양하는 과정을 거친뒤 선양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서기 8년 황제의 자리에 올.. 2024. 7. 13.
[중국사]- 진나라의 멸망, 한제국의 등장과 한무제 [중국사]- 진나라의 멸망, 한제국의 등장과 한무제 진시황의 중국통일은 중국 역사에 있어 커다란 사건이었다. 하, 은, 주 시기까지는 국가는 황하 중하류에 중심지를 두고 주변에 영향력을 끼치는 정도였고,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는 각 제후국의 영역이 확대되었지만 동시에 그 지역 문화와 일체화 되던 시기였다. 이러한 점에서 진시황의 중국통일은 주나라 시기의 권위회복 또는 권력승계가 아닌 새로운 시기의 도래로 봐야한다. 진 제국은 자신의 통치방식을 점령한 땅에 이식하여 통치하였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제국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진나라는 무리한 토목공사와 엄격한 법 집행 등에 사회불만세력이 속출하고, 내실이 다져지지 않은 채 급속한 통합을 이루었기에 사회가 위태로웠다. 진시황 사후 제국은 급속하게 무너져 .. 2024. 7. 12.
[중국사] - 전국시대를 평정한 진나라의 전국통일 [중국사] - 전국시대를 평정한 진나라의 전국통일 중국 대륙의 패권을 잡기위해 전국에서 영웅이 할거하였다. 지역패권을 잡은 지역군벌들은 옆 지역의 세력을 흡수하기위해 노력했고 전국이 전쟁의 포화로 빠져들었다. 전국시대 전쟁이 계속 되면서 사회 곳곳에서는 불만이 쌓여갔다. 지역의 패자들은 지역의 재화를 모두 쏟아부어 전쟁에 나섰다. 그런만큼 많은 양의 물자가 전쟁에 소비되었다. 이러한 재화의 손실은 모두 생산계층인 농민이 부담해야했다. 또한 이전 시대에 비해 전쟁의 규모가 커지고, 수많은 백성들이 국가에 의해 직접적으로 징병되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상인들 역시도 전쟁으로 상업활동에 제약을 받게 되면서 종국에는 이렇게 계속되는 전쟁을 종식해야한다는 사회 각 계층의 생각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전국에.. 2024. 7. 11.
[중국사] - 중국 춘추전국시대와 진나라의 팽창 춘추 시대가 끝나고 전국시대가 시작된다. 전국시대가 시작되는 기점은 주로 진나라가 기원전 453년 한, 위, 조의 세나라로 분열되는 것을 기점으로 잡는다. 서주의 왕으로부터 직접 제후로 봉해진 제후국 진이 내부의 하극상으로 분열되었다는 것은 명목상으로라도 남아있던 체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적 의미였기 때문이다.  전국시대는 오로지 강한 국력을 가진 자만이 전쟁통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전국시대 군주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극대화하고 자신의 세력내에서 하극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권력을 군주 중심으로 재편하였다. 또 다른 제후국과의 무한 경쟁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국강병책을 강구하였다. 춘추 전국시대의 군주들은 자신의 근거지에서 나오는 물산을.. 2024. 7. 10.
[중국사] - 춘추: 패자의 시대 [중국사] - 춘추: 패자의 시대서주의 봉건제도는 혈연에 의한 관계와 결합된 사회제도였기에 제도 성립 초기에는 끈끈한 혈연관계로 꽤나 결속력이 강했다. 그러나 후대로 갈수록 관계가 멀어지고 혈연적으로 소원해지면서 통치체제 전반에 커다란 문제가 발생하였다. 왕위를 둘러싸고 각 세력간의 각축전이 진행되자 주나라는 12대 왕 유왕 때 멸망하였다. 유왕은 견융, 서이 등의 이민족을 동반한 반란군에 의해 죽고, 태자였던 백복도 살해당했다. 이민족 견융은 주나라 수도 호경에 눌러앉아 약탈을 벌였고, 제후들은 견융을 토벌하고 호경을 되찾았다. 그후 새로운 왕인 평왕을 옹립하고 황폐화된 도읍을 버리고 낙읍, 낙양으로 천도하여 동주시대를 열었다. 새롭게 천도한 주나라를 이전의 주나라와 구분하여 동주라고 부른다. 멸망한 .. 2024. 7. 9.
[중국사] - 주나라의 등장, 서주와 봉건제 [중국사] - 주나라의 등장, 서주와 봉건제주나라는 상나라를 물리치고 새롭게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국가이다. 상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을 물리친 주나라의 왕 무왕은 황하의 지류인 웨이허 강 분지에서 세력을 확대해 상나라를 무너트리고, 중국 최초의 천자국을 건설하였다. 주나라는 기원전 771년 견융에 의해 낙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를 서주, 옮긴 이후를 동주라고 구분한다.  상과 관련해서는 지극히 적은 문헌 기록과 갑골문만이 남아 있지만. 서주 시기는 청동기에 새겨진 명문이 다량으로 확인될 뿐 아니라 상서, 주례등과 같은 유가 문헌 속 에서도 관련 기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을 바탕으로 복원된 주나라 사회는 '상주 혁명'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상과 사뭇 다른 모습을 띤다. 일단 상과는 달리 봉건제.. 2024.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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